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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라는 양날의 검: 단골을 지키며 신규 고객을 사로잡는 법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05 16: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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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플레이스'의 저주에 관하여
  • 칼날의 함정 - 새로움이 당신을 배신하는 세 가지 방식
  • 검을 다루는 기술 - '닻과 돛' 전략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 '핫플레이스'의 저주에 관하여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외식업계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는 하나의 거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듯합니다. 바로 '새로움'에 대한 강박입니다. 

    •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하는 '신상 맛집', 끝없이 이어지는 '오픈런' 행렬,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뜨고 지는 수많은 '핫플레이스'들. 이 현란한 세계 속에서 '우리 가게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일 겁니다. 마치 모두가 광란의 댄스파티에 참여하는데, 나 홀로 구석에서 쭈뼛거리는 기분이랄까요.

    • 그래서 우리는 유혹에 빠집니다. 옆 가게가 '로제'로 성공하니 너도나도 로제 메뉴를 만들고, 저쪽 가게가 '노출 콘크리트'로 주목받으니 멀쩡한 벽지를 뜯어냅니다. 

    • 이 변화와 혁신에 대한 열망은 물론 건강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새로움'이라는 매혹적인 단어가 실은 날카로운 양날의 검(double-edged sword)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검을 잘못 휘두르면, 새로운 고객을 베기는커녕 내실을 지탱해주던 단골의 심장과 우리 브랜드의 영혼까지 베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은 이 위험한 검을 안전하고 현명하게 다루는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단골이라는 든든한 아군을 지키면서, 신규 고객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정복할 수 있을까요? 그 균형의 기술에 대해 함께 고찰해 보겠습니다.



  • 칼날의 함정 - 새로움이 당신을 배신하는 세 가지 방식

    • 변화를 시도하기 전, 우리는 그 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시나리오부터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의욕만 앞선 새로움의 추구는 보통 세 가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 첫째, '유령 식당'이 되어버립니다: 정체성의 상실

        • 매일 만날 때마다 성격이 바뀌는 친구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어제는 진지한 고전 음악 애호가였다가, 오늘은 열정적인 힙합 댄서, 내일은 경건한 명상가로 변합니다. 처음엔 흥미롭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래서 진짜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과 함께 깊은 불신이 싹틀 겁니다. 

        •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렌드를 좇아 몇 달 간격으로 컨셉을 갈아엎는 가게는 결국 아무런 색깔도 없는 '유령 식당'이 되어버립니다. 아늑한 심야식당으로 사랑받던 곳이 어느 날 갑자기 인스타그래머블한 디저트 카페로 변하고, 또 몇 달 뒤엔 가성비 덮밥집으로 바뀌는 식입니다. 

        • 결국 그곳을 사랑했던 단골들은 갈 곳을 잃고, 트렌드를 좇던 뜨내기손님들은 또 다른 '신상'으로 떠나버립니다. 남는 것은 텅 빈 가게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공허한 질문뿐입니다.

      • 둘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습니다: 단골의 배신감

        •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단골에게 우리 가게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한 조각이라는 것입니다. 지친 퇴근길에 위로가 되어주던 그 된장찌개, 연인과 처음 만나 설레며 먹었던 그 파스타, 아이가 태어난 날 온 가족이 함께 먹었던 그 탕수육. 메뉴 하나하나에는 고객의 추억과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더 새롭고 트렌디한 메뉴를 위해 단종시켰습니다"라고 쉽게 말해버린다면, 고객은 단순히 '좋아하던 음식이 없어졌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 추억이 부정당했다', '이 가게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깊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 한번 돌아선 단골의 마음은 웬만한 신메뉴 프로모션으로는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값비싼 자산의 상실입니다.

      • 셋째, 스스로 무너집니다: 주방의 번아웃과 품질 저하

        • 밖에서 보기엔 화려한 변화지만, 주방은 전쟁터가 됩니다. 새로운 메뉴 하나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선 수많은 연구개발(R&D)과 반복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변화의 주기가 너무 짧으면, 주방팀은 어떤 요리 하나에도 '장인'이 될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 마치 이제 막 쇼팽을 연습하기 시작한 피아니스트에게 다음 주엔 리스트를, 그다음 주엔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 결과는 뻔합니다. 깊이 없이 어설프게 흉내만 낸 요리, 들쑥날쑥한 퀄리티, 그리고 지쳐서 떠나는 직원들. 결국 새로움이라는 허울 좋은 목표 아래, '맛'이라는 레스토랑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가 무너져 내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 검을 다루는 기술 - '닻과 돛' 전략

    • 그렇다면 이 위험한 검을 버려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검을 다루는 현명한 검객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비결을 '닻(Anchor)과 돛(Sail)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굳건한 닻과 바람을 타는 돛을 모두 필요로 하듯, 성공적인 레스토랑 역시 '변치 않는 가치'와 '변화하는 즐거움'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 먼저, 당신의 '닻'은 무엇입니까?

      • '닻'은 우리 가게의 정체성이자 철학, 결코 타협할 수 없는 핵심 가치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메뉴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가령, 이태원 '부자피자'의 닻은 '나폴리 화덕에서 구워낸 정통 피자 도우'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시즌에 따라 새로운 토핑을 올린 피자(돛)를 선보일 수는 있어도, 이 도우의 원칙만큼은 목숨처럼 지킵니다. 고객들은 바로 그 변치 않는 닻의 맛을 신뢰하고 찾아옵니다.

      • 또 다른 예로, 어떤 레스토랑의 닻은 '매일 아침 통영에서 직송되는 해산물'이라는 원칙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메뉴판의 생선구이(돛)는 매일 바뀌지만 '오늘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쓴다'는 핵심 철학(닻)은 굳건히 지켜집니다. 오히려 고객들은 그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신뢰하게 됩니다. '오늘은 어떤 싱싱한 생선이 나왔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찾아오는 것이죠.

      • 여러분, 여러분 가게의 '닻'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바꾸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지켜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여러분 브랜드의 심장입니다.


    • 다음으로, 어떤 '돛'을 올릴 것입니까?

      • '돛'은 닻을 내린 배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의도되고 통제된 새로움입니다. 중요한 것은, 돛은 언제든 내리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리스크가 적은 실험이어야 합니다.

      • 70년 전통의 평양냉면 노포 '우래옥'을 생각해 보십시오. '최고의 평양냉면'이라는 닻은 미동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깔끔한 배달 시스템을 도입하고(돛), 명절에는 고급스러운 선물세트를 판매(돛)합니다. 핵심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시대와 소통하는 지혜입니다.

      • 닻이 훌륭한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의 재즈 공연'은 훌륭한 돛이 될 수 있습니다. 음식 맛(닻)에 대한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간의 경험(돛)에 새로움을 더하는 것이죠. 전통 한정식집(닻)이 젊은 도예가와 협업하여 한 시즌 동안 특별한 디자인의 식기(돛)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들은 익숙한 맛에 더해진 새로운 감각적 즐거움에 열광할 것입니다.


  • 맛집을 넘어, 사랑받는 노포(老鋪)를 향하여

    • 여러분. '새로움'은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향하게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바람의 방향만 좇아 줏대 없이 표류할 것인가, 아니면 굳건한 닻을 내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돛을 펼칠 것인가. 그 선택이 '반짝하는 맛집'과 '대대손손 사랑받는 노포'의 운명을 가릅니다.

    • 지금 당장 메뉴판을 갈아엎고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게에서 손님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 결코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순간, 여러분은 비로소 '새로움'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안전하게 다루는 지혜로운 검객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굳건한 닻을 찾으십시오. 위대한 항해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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