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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만 좋으면 망하더라, 그래서 나는 '경험'을 팔기로 했다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01 21: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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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파스타는 완벽했다. 망하기 전까지는.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딸랑-"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하아..."

텅 빈 홀을 보며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 이름은 김민준, 이 망해가는 파스타 집 '팩트 파스타(Fact Pasta)'의 사장이다.

내 파스타는 완벽하다. 이탈리아 유학파 출신인 내가 최고급 세몰리나 밀가루와 유기농 토마토를 써서 뽑아낸 생면 파스타. 면의 익힘 정도(알덴테), 소스의 유화 상태, 재료의 신선도까지, 모든 '팩트'가 완벽했다. 오픈 초기, 맛집 블로거들은 내 파스타를 극찬했다.

'강남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통 파스타의 교과서!'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블로그를 보고 찾아왔던 손님들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그들의 텅 빈 눈빛이 말하는 것 같았다.

'맛있긴 한데... 뭐, 그게 다네.'


쿵!


나는 주방 작업대에 주먹을 내리쳤다.

'대체 뭐가 문제지? 이렇게 완벽한데!'

그날도 자정 넘어 홀로 남아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고 허름한 코트 차림의 노인이 들어왔다. 마감했다고 말하려던 찰나, 그의 깊은 눈빛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자리를 안내했다.

"남은 재료로 아무거나... 사장님이 가장 자신 있는 걸로 부탁합니다."

나는 내 모든 기술을 쏟아부어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었다. 완벽한 황금빛, 완벽한 유화, 완벽한 면 익힘. 노인은 말없이 접시를 비우고는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사장님." "네, 손님." "이 파스타에는 '사실'만 있고, '이야기'가 없군요."


'......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시간을 선물해 보세요."

그는 낡은 수첩 한 권을 테이블에 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수첩의 표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경험 설계의 모든 것]



제1화: 당신은 셰프가 아니라, 감독이다


그날 밤, 나는 홀린 듯 낡은 수첩을 펼쳤다. 사기꾼 같은 노인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내 심장이 너무나도 절박하게 뛰고 있었다.


[제1장: 고객은 음식이 아닌, '기분'을 산다] 인간의 뇌는 합리적이지 않다. 혀끝의 맛보다 공간의 분위기, 직원의 눈빛, 귓가의 음악에 먼저 반응한다. 당신이 팔아야 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고객의 '기분 좋은 시간' 그 자체다.

'기분 좋은 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나는 손님들의 '기분'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오로지 '완벽한 맛'이라는 사실에만 집착했을 뿐.

수첩은 계속해서 나를 가르쳤다.


[제2장: 당신은 셰프가 아니라, 무대의 '감독'이다] 식당을 '한편의 연극'으로 생각하라. 당신은 연출가다. 이제부터 당신의 가게를 새롭게 연출해야 한다.


[MISSION 1: '시나리오'를 써라]

  • 가게의 이름을 바꾸고, 당신만의 '이야기'를 입혀라.

나는 가게 간판을 멍하니 바라봤다. '팩트 파스타'. 차갑고 건조한 이름. 나는 다음 날 당장 간판을 내렸다. 그리고 며칠 밤낮을 고민해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민준의 식탁'

그리고 가게 입구에 작은 칠판을 내걸었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이탈리아 골목에서 맛보았던 '그날의 위로'를 당신의 식탁에 올립니다."


[MISSION 2: '무대'를 연출하라]

  • 이야기에 맞게 공간을 재구성하라.

나는 병원처럼 새하얗던 조명을 따뜻한 노란색 전구로 바꿨다. 텅 빈 벽에는 이탈리아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을 걸었다.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최신 가요 대신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MISSION 3: '배우'를 캐스팅하라]

  • 직원에게 '역할'을 부여하라.

나는 유일한 직원인 아르바이트생 지혜 씨에게 말했다.

"지혜 씨, 이제부터 당신은 그냥 서빙 알바가 아니에요. 이 식탁의 '주인'으로서, 지친 손님들을 맞이하고 위로해 주는 역할을 맡아주세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그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팩트'만 가득했던 나의 가게는, 어느새 서툴지만 따뜻한 '이야기'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여전히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한 손님이 계산을 하며 내게 말했다.

"사장님, 오늘 파스타... 정말 맛있었어요. 아니, 그냥 맛있는 게 아니라... 뭐랄까, 꼭 위로받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노인이 남기고 간 수첩의 마지막 장에 쓰여 있던 문장이 떠올랐다.


'맛있는 가게는 잊히지만, 이야기가 있는 가게는 기억된다.'

나의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민준의 식탁'이라는 이 작은 무대 위에서,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연출가가 되리라. 그렇게, 나는 '경험'을 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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