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프롤로그: 소문은 바람을 타고
군포시 산본동, 낡은 상가 건물 2층. 간판조차 흐릿한 '백도사 진료실' 앞은 오늘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길게 늘어선 줄 끝에는 어딘가 지쳐 보이는 젊은 남자, 김현수 씨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너덜너덜해진 잡지 스크랩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백도사? 그 사람 진짜 용하다니까. 내가 지난주에 허리가 아파서 갔는데, 글쎄... 진료실 문턱 넘는 순간부터 통증이 절반은 줄어드는 것 같더라고!"
"쉿! 조용히 해. 그분은 '기운'으로 사람을 고친대. 함부로 말 섞으면 기운이 흐트러진다니까."
앞선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에 현수 씨는 코웃음을 쳤다. '기운이라니, 무슨 황당한 소리야. 여기가 점집이야 병원이야?' 하지만 그의 허리 통증은 한 달째 그를 괴롭히고 있었고, 유명하다는 병원 열 군데를 전전해도 차도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왔다. 삐걱이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현수 씨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1화: '공간'이라는 첫인상의 마법
진료실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아니, 넓지 않다는 표현보다는 '꽉 차 있었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은은한 백단향이 코끝을 스쳤고, 통창으로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가장 먼저 현수 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방 한가득 채운 책들이었다. 동서양의 의학 서적부터 철학 고전, 심지어는 만화책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지럽다는 느낌보다는, 이 모든 책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정갈함이 느껴졌다.
"어서 오게."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백도사가 앉아 있었다. 백발의 단정한 머리, 구김 하나 없는 흰 도포.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고풍스러운 차림이었다. 현수 씨는 무심코 자신의 삐뚤어진 셔츠와 구겨진 바지를 내려다봤다. 왠지 모르게 민망해졌다.
"앉게."
백도사는 손짓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에 앉아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벽에는 오래된 동양화 몇 점이 걸려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족자 두루마리들이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해부도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한문으로 쓰인 수상한 명패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현수 씨는 저절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확실히... 뭔가 다르긴 하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 사람은 뭔가 아는 사람일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보통의 병원에서 느끼던 딱딱함이나 불신과는 다른, 묘한 안정감이 감돌았다. 마치 이 공간 자체가 '당신은 이곳에서 치유될 수 있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현수 씨는 긴장이 풀리면서 허리의 통증도 조금은 가라앉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2화: '사람'이라는 살아있는 처방전
"어디가 불편해서 왔는가?"
백도사의 질문에 현수 씨는 허리 통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 시작된 통증,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오갔던 경험, MRI 검사 결과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백도사는 현수 씨의 말을 끊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 그의 시선은 현수 씨의 눈을 곧장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현수 씨의 모든 말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현수 씨가 말을 마쳤을 때, 백도사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의 고통, 충분히 짐작이 가는군. 허리 통증은 몸의 중심이 무너졌을 때 오는 신호라네."
그는 어려운 의학 용어 대신 평이한 단어로 현수 씨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벽에 걸린 인체 해부도를 가리키며 허리뼈와 신경의 위치를 짚어주었다. 설명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아픈 걸까?'라는 현수 씨의 막연한 불안감을 콕 집어 해소해주는 듯했다.
"걱정 말게. 몸의 중심을 바로잡는 법을 알려줄 테니. 자네의 몸은 스스로 치유할 힘을 가지고 있네. 나는 그저 그 힘을 일깨워주는 조력자일 뿐이지."
백도사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확신이 배어 있었다. 그는 현수 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손길에서 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현수 씨는 알 수 없는 위안과 함께 '이분이라면 내 허리를 고쳐줄 수 있을 거야'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믿음은 마치 따뜻한 약재처럼 그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의사는 아니지만, 의사 이상의 신뢰를 주는 '사람'이라는 처방전이었다.
3화: '콘텐츠'라는 기운의 확장
진료가 끝나고 백도사는 현수 씨에게 작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백도사의 블로그 주소와 유튜브 채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집에 가서 심심할 때 한번 보게. 허리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네."
집으로 돌아온 현수 씨는 반신반의하며 백도사의 블로그를 찾아봤다. 그곳에는 '허리 통증 완화를 위한 스트레칭 5가지', '올바른 자세를 위한 앉는 법', '일상 속 허리 건강 관리 팁' 등 흥미로운 글들이 가득했다. 글들은 백도사의 진료실에서 들었던 설명처럼 쉽고 명확했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현수 씨의 고민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가 느껴졌다.
유튜브 채널에서는 백도사가 직접 스트레칭 동작을 시연하는 영상도 있었다. 흰 도포를 입고 진지하게 동작을 설명하는 백도사의 모습은 진료실에서 보았던 신뢰감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 사람이 정말 이 분야의 전문가구나'라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 현수 씨는 다음 진료일까지 백도사의 콘텐츠를 매일 찾아보며 그의 조언을 따랐다.
그리고 일주일 뒤, 현수 씨는 다시 백도사의 진료실 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허리 통증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 몸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진료실의 '기운', 백도사의 '기운', 그리고 온라인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져 현수 씨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 것이다.
에필로그: 백도사의 정의(定義)
"자네, 많이 좋아졌군."
백도사는 현수 씨의 얼굴을 보며 빙긋 웃었다.
"도사님 덕분입니다. 정말... 신기하네요. 처음에는 그냥 용하다는 소문에 이끌려 왔는데, 지금은 진짜 도사님 팬이 됐습니다."
현수 씨의 말에 백도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저 '일상생활에서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일반인들'의 '잘못된 습관과 자세'를 '오랜 시간 쌓아온 지혜와 경험으로 바로잡아주는' '생활 속 건강 도사'일 뿐이라네."
백도사의 정의는 명확했다. 그리고 그 정의는 진료실의 단정한 책장, 그의 고풍스러운 차림, 유튜브 영상 속의 친절한 설명까지,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현수 씨는 진료실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기운'은 결코 미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작은 진료실의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신뢰'라는 거대한 에너지였다. 백도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파는 대신, 보이는 모든 것으로 '자신'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수 씨는 기꺼이 그 '기운'을 사서 자신의 몸에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