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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마저 상품이 된 사회, 당신은 어떤 거리를 원하십니까?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8-21 06: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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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지죠. 사방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대화를 나누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저마다 노트북을 보거나 이어폰을 낀 채, 자신만의 섬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돈과 시간을 들여 굳이 남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혼자가 되려는 걸까요? 집이라는 완벽한 1인 공간을 두고 말입니다.


이 기묘한 행동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실재감(Social Presence)'이라는 개념을 잠시 빌려와야 합니다. 말이 좀 어렵나요? 쉽게 말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정도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타인과 직접 부딪히는 것은 피곤해하는 존재입니다. 카페의 소음, 옆자리 사람의 희미한 온기는 성가신 관계의 의무는 지우고 심리적 안정감만 주는, 아주 효율적인 '타인의 존재'인 셈이죠.


이런 인간의 이중적인 마음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철학적 비유가 있습니다. 바로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의 딜레마'입니다. 서로의 온기가 필요해 다가서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날카로운 가시에 서로를 아프게 하는 고슴도치 말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바로 이 딜레마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기어이 상품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일본의 라멘 가게, '이치란 라멘'입니다. 저는 이 식당을 처음 보고 무릎을 쳤습니다. 이건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공간이 아닙니다. 현대인의 고독과 관계에 대한 욕망을 정교하게 설계한 하나의 사회적 실험실이죠. 독서실 칸막이 같은 좌석에 앉아 주문부터 식사까지 직원 얼굴 한번 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와 라멘 한 그릇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맛에 집중한다'는 명분 아래, 이 시스템은 관계의 모든 스트레스를 원천적으로 제거해 버립니다.


이치란 라멘은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혼자 밥 먹기 불편하셨죠? 그 어색함과 불편함, 저희가 돈 받고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리고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고독할 권리, 방해받지 않을 자유를 사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외식업의 혁신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혼자 영화를 보고, 말을 걸지 않는 택시를 호출하며, 점원의 개입 없이 쇼핑을 끝냅니다. 기술의 발전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고, 시장은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습니다. 타인이라는 존재가 주는 위안은 원하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불편함은 제거하고 싶은 욕망 말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가성비 좋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내어주고 있는 걸까요? 가시에 찔릴 위험이 없는 안전한 거리를 얻는 대신, 서로의 온기를 나눌 기회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독마저 완벽한 상품이 된 시대, 저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공동체 안에서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타인과 어떤 거리를 원하십니까?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지불할 용의가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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