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고개가 아플 때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숙인 고개 때문이 아니라, 저마다 "나 좀 봐주세요"라고 아우성치는 간판들의 전쟁을 올려다보느라 그렇습니다. 특히 한국의 상가 건물은 그야말로 간판의 전시장입니다. 1층은 물론이고 2층, 3층, 심지어 꼭대기 층까지 온갖 색깔의 글씨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지요. 자영업 사장님들 사이에서 "2층은 식당의 무덤"이라는 속설이 통합니다. 임대료가 1층의 절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제 발로 걸어 올라오게 만드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아무리 큰 간판을 걸어도, 행인의 시선은 대개 눈높이인 1층, 기껏해야 1.5층 머물기 마련이니까요.
공간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에게 많은 분이 묻습니다. "2층인데 어떻게 해야 손님 눈에 띌까요?" 저는 그러면 대뜸 이렇게 되묻곤 합니다. "사장님, 가게 천장에 뭘 칠하셨습니까?"
뜬금없는 소리 같겠지만, 여기에 2층 생존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길을 걷는 사람의 시선에서 2층을 올려다볼 때, 가장 넓은 면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닥도, 벽도 아닌 바로 '천장'이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의 검은 구멍인가, 떠 있는 황금빛 구름인가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온 거리를 상상해 봅시다. 1층 가게들은 쇼윈도를 통해 내부가 훤히 보입니다. 하지만 2층은 다릅니다. 대부분의 2층 매장은 조명을 아래로, 즉 바닥을 향해 쏘고 있습니다(Down-light). 빛은 바닥에 닿아 사라지고, 천장은 어둠 속에 남겨집니다.
길 건너편에서 보면 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요? 유리창 너머로 천장이 시커멓게 죽어 있으니, 마치 건물의 허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조차 분간이 안 가는, 그저 '검은 구멍(Black Hole)'처럼 보이는 것이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두운 곳, 속을 알 수 없는 곳에는 발을 들이기 꺼립니다.
반면, 장사가 잘되는 2층 가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빛을 바닥에 버리지 않고 천장으로 쏘아 올립니다. 전문 용어로 '업라이팅(Up-lighting)'이라고 합니다. 하얀색 혹은 노출 콘크리트 천장에 따뜻한 빛을 쏘아 올리면, 천장 자체가 거대한 반사판이 되어 빛을 머금습니다.
행인의 눈에는 이것이 마치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따뜻한 황금빛 구름'처럼 보입니다. 검은 밤거리의 허공에 떠 있는 밝고 따뜻한 덩어리. 이것만큼 강력한 시각적 유혹이 또 있을까요?
뉴욕의 첼시 마켓과 파리의 카페들이 가르쳐 주는 것
해외 사례를 한번 볼까요? 뉴욕 맨해튼의 '첼시 마켓(Chelsea Market)'이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의 레스토랑들을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이곳들은 천장이 높고 배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이 거친 천장을 그들은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그들은 절대 천장에 형광등을 달아 바닥을 비추지 않습니다. 대신 벽면에 조명을 설치해 천장을 향해 빛을 쏘거나, 기둥을 타고 빛이 올라가게 만듭니다. 밖에서 보면 그 거친 천장의 텍스처와 배관들이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입니다. "저 위에는 뭔가 힙(Hip)하고 멋진 공간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죠.
파리의 유서 깊은 카페인 '르 트랑 블루(Le Train Bleu)'나 샹젤리제 거리의 2층 테라스 식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천장은 화려한 프레스코화나 장식으로 덮여 있기도 하지만, 핵심은 그 천장을 비추는 은은한 간접 조명(Cove Lighting)입니다. 이 빛은 공간 전체를 감싸 안으며, 길을 걷는 관광객들에게 "이곳은 당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우아한 세계"라고 속삭입니다. 천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간판이자, 브랜드의 품격을 말해주는 얼굴이 되는 셈입니다.
강릉 테라로사의 붉은 벽돌과 빛의 결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인 '테라로사(Terarosa)'의 공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강릉 본점이나 양평점 같은 곳을 보면 층고가 매우 높습니다. 그들은 이 높은 천장 공간을 어둠 속에 방치하지 않습니다.
철골 트러스 구조나 붉은 벽돌 벽면을 따라 빛을 스치듯 비추는 '그레이징(Grazing)'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기법은 마감재의 질감을 극적으로 강조합니다. 밖에서 통유리 너머로 그 공간을 보면, 빛을 받은 천장과 구조물의 입체감이 압도적으로 다가옵니다. 단순히 "밝다"는 느낌을 넘어 "공간이 깊고 풍성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것이 소비자로 하여금 "저 공간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입니다.
비싼 간판 대신, T5 조명 몇 개가 낫다
컨설팅 현장에서 만나는 사장님들께 저는 종종 짖궂은 제안을 합니다. "사장님, 외벽에 500만 원짜리 채널 간판 다는 것보다, 천장 테두리에 5만 원짜리 T5 조명(간접 조명) 열 개를 두르는 게 매출에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농담 같지만 진담입니다. 2층 매장의 천장을 하얗게(혹은 밝은 크림색으로) 칠하고, 그 천장을 향해 3000K(전구색)의 빛을 쏘아 올리는 것. 이것은 투자 대비 효과(ROI)가 가장 확실한 마케팅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첫째, 면적의 승리입니다. 간판은 기껏해야 가로세로 몇 미터지만, 천장은 매장 평수만큼의 거대한 면적입니다. 이 넓은 면적이 빛나고 있으면, 1층에 있는 웬만한 간판보다 훨씬 눈에 잘 띕니다. 둘째, 공간감의 확장입니다. 천장이 밝으면 밖에서 볼 때 층고가 더 높아 보이고, 매장이 훨씬 넓고 쾌적해 보입니다.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당신의 천장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혹시 지금 2층이나 3층에서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다면, 오늘 밤 잠시 밖으로 나가 건너편 인도에서 가게를 올려다보시길 권합니다.
당신의 가게 천장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시커먼 어둠 속에 묻혀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형광등 불빛에 창백하게 질려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행인들은 당신의 가게를 '영업이 끝난 사무실'이나 '창고' 쯤으로 여기고 지나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조명의 방향을 바꾸십시오. 빛의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게 하십시오. 밋밋했던 하얀 천장에 빛의 숨결을 불어넣으면, 그것은 더 이상 건물의 부속물이 아니라 당신의 가게를 알리는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간판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사람은 빛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천장이 따뜻하게 빛날 때, 비로소 손님은 계단을 오를 용기를 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층이라는 악조건을 딛고 성공하는 공간들의, 작지만 위대한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