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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바람이 불 때, 당신의 가게는 '이글루'인가, '냉동고'인가?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2-02 17: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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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철 매출을 녹이는 '시각적 온도(Visual Temperature)'의 경제학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갑작스레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던 오늘 아침, 유난히 제 눈길을 끄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 몸을 더 춥게 만드는 카페가 하나 있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파사드에 청량한 하늘색 간판, 그리고 통유리 너머로 쏟아져 나오는 형광등 불빛. 여름이었다면 산토리니의 해변을 연상케 했을 그 청량함이, 이 살을 에는 겨울바람 속에서는 마치 거대한 '냉동고'처럼 느껴지더군요.


아마 그 카페 사장님은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가게는 위생적이고 깨끗해 보이잖아요!"라고 항변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이성적인 소비자가 되기 이전에 생물학적인 생존 기계입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영장류에게 '차가운 푸른 빛'은 본능적인 회피 대상일 뿐입니다. 오늘 저는 공간 마케팅 컨설턴트이자 조명 전문가로서, 이 '시각적 온도'가 어떻게 겨울철 당신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차가운 빛의 역설: 깨끗함이냐, 삭막함이냐


빛의 색은 켈빈(K)이라는 온도로 측정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무실에서 보는 하얀 빛은 6000K 이상의 주광색입니다. 이 빛은 사람을 각성시키고 사물을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차가움', '긴장', '업무'를 상징합니다. 반면, 3000K 이하의 전구색은 노을이나 촛불, 모닥불의 색입니다. 이는 '따뜻함', '이완', '휴식'을 의미하죠.


겨울철 거리의 행인들은 무의식적으로 '피난처'를 찾습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류는 추위가 닥치면 불을 피운 동굴(Cave)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식당이 한겨울에 6000K의 창백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면? 그것은 고객의 뇌에 "여기는 춥고, 삭막하며, 편안히 쉴 수 없는 곳"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마케팅입니다.



세계적 브랜드들은 왜 '노란 불빛'을 고집할까?


사례를 들어볼까요? 세계 어디를 가나 스타벅스 매장의 조명은 3000K 내외의 따뜻한 전구색을 유지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제3의 공간', 즉 집과 직장 사이의 안식처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겨울철, 스타벅스의 묵직한 우드 톤 인테리어와 노란 조명은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커피의 온기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만약 스타벅스가 편의점처럼 하얀 형광등을 썼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오래 머물렀을까요? 아마 회전율은 빨라졌겠지만, 브랜드의 팬덤은 사라졌을 겁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마(Noma)'나 북유럽의 카페들을 봅시다. 그곳은 겨울이 길고 혹독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그 어둠과 추위를 어떻게 이겨낼까요? 바로 '휘게(Hygge)'라는 문화 속에 답이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천장에 밝은 형광등을 달아 대낮처럼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테이블마다 초를 켜고, 낮게 펜던트 조명을 떨어뜨려 '빛의 웅덩이'를 만듭니다. 밖은 얼어붙을 듯 춥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 은은하고 붉은 불빛은 행인들에게 강력한 시각적 온기를 전달합니다. "저기 들어가면 따뜻한 수프와 이야기가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죠.


국내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성수동이나 익선동에서 인기를 끄는 '어니언(Onion)' 같은 베이커리 카페나 한옥을 개조한 식당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낡은 공간의 차가움을 상쇄하기 위해 극도로 따뜻한 색감의 조명을 사용합니다. 특히 창가 쪽에 배치된 따뜻한 스탠드나 펜던트 조명은 밤이 되면 그 자체로 간판보다 더 강력한 호객 행위를 합니다. 고객은 간판을 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따뜻한 빛의 분위기에 홀린 듯 빨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글루 효과'를 노려라: 반전의 미학


그렇다면 앞서 본 '하얀 파사드에 하늘색 간판'을 가진 카페는 망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외관을 뜯어고칠 수 없다면, 빛으로 '반전'을 꾀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이글루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글루는 겉보기에 차가운 얼음 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따뜻한 불과 온기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글루는 낭만적입니다. 하얀색 외벽을 가진 매장일수록, 내부, 특히 창가 쪽의 조명은 더 짙은 호박색(2700K)이어야 합니다.


차가운 외벽 프레임 속에 담긴 따뜻한 불빛. 이 극적인 대비(Contrast)는 밋밋한 웜톤 매장보다 오히려 더 강력한 흡입력을 가집니다. "밖은 춥지만, 안은 이렇게나 따뜻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웅변하는 것이죠.



지금 당장 당신의 천장을 점검하라


혹시 당신의 매장이 오늘따라 유난히 썰렁해 보인다면, 그리고 손님들이 들어와서 패딩 점퍼를 벗지 않고 있다면, 보일러 온도를 올리기 전에 조명을 먼저 점검하십시오.


첫째, 허공에 빛을 뿌리지 마십시오. 많은 자영업자가 천장에 다운라이트를 박아 바닥만 비춥니다. 바닥은 손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 벽을 비추거나(Wall Washing), 테이블 위로 조명을 내려(Pendant) 빛이 머물게 하십시오. 빛이 물체에 닿아야 비로소 공간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둘째, 창가의 온도를 높이십시오. 길 가는 손님과 가장 먼저 마주하는 영업사원은 직원이 아니라 '창가 조명'입니다. 창가 쪽에 주황색 갓을 쓴 스탠드 하나만 두어도, 당신의 가게는 '추운 사무실'에서 '따뜻한 사랑방'으로 변모합니다.


셋째, 음식의 색을 살리십시오. 하얀 형광등 아래서 김치찌개는 죽은 피 색깔처럼 보이고, 스테이크는 식어 보입니다. 붉은색이 도는 전구색 조명 아래서 음식은 비로소 갓 만든 듯한 생기를 찾습니다. 맛은 혀가 아니라 눈에서 시작됩니다.



마치며: 빛은 언어다


장사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논리보다 감각에 먼저 반응합니다.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 서 있는 사람에게, "우리 가게 커피가 최고급 원두를 씁니다"라는 문구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저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빛 한 줄기'가 그를 문 안으로 이끕니다.


당신의 가게는 지금 길 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습니까? "여기는 차가운 냉동고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진 않습니까? 오늘 밤, 가게 밖으로 나가 건너편 도로에서 당신의 매장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질문해 보십시오.


"나라면, 이 추운 날 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가?"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이제 스위치를 바꿀 시간입니다. 빛은 전기가 아니라, 당신이 고객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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