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존 갈레(John Gallais) — 노르망디에서 호이안까지 세계를 건너 탄생한 한 셰프의 위대한 항해
  • 안형상 기자
  • 등록 2025-11-29 09:30:13
  • 수정 2025-11-29 09:38:04
기사수정
  • 프랑스·영국·태국·라오스·베트남.
  • 25년의 길 위에서 완성된 ‘메종 루시엥’이라는 대서사시

[글로벌 외식정보=안형상 기자]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의 거센 바람과 소금기 어린 파도 소리는 어린 존 갈레의 귓가에 오래전부터 ‘어딘가로 떠나야 할 사람’이라는 운명의 속삭임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바람은 그에게 새로운 바다를 향해 노를 젓게 했고, 그 파도는 언젠가 그가 세울 하나의 성채—메종 루시엥(Maison Lucien)—에 이르는 여정의 첫 장을 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어느 항해자의 이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신밧드(Sinbad). 미지의 대륙마다 새로운 진실을 배우고, 바람이 이끄는 대로 떠돌며, 만나는 이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던 영원한 모험가.존 갈레는 요리로 세계를 항해한 신밧드의 후예였다.


제1장. 우연이라는 파도—처음 돛을 올리게 한 내기

15살의 여름, 소년 존에게 아버지는 가벼운 내기를 걸었다.
“일자리를 구하면, 반드시 그곳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소년은 장난처럼 약속했지만, 운명은 그 내기 하나를 바람 삼아 그의 배를 먼 바다로 밀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영국 림플리 스토크의 작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코미 셰프(commis chef)의 앞치마를 두르게 되었다.

요리학교도, 제대로 된 영어도 없던 소년.
하지만 첫 서비스를 마쳤을 때 그는 깨달았다.
“이건 일자리가 아니라, 나의 길이다.”

신밧드가 첫 항해에서 자신이 ‘바다의 사람’임을 알았듯, 존 역시 그날 자신이 ‘요리의 항해자’임을 직감했다.



제2장. 장인의 왕국 속으로—프랑스, 기술의 심장부

프랑스로 돌아온 존은 바요(Bayeux)의 리옹 도르(Lion d’Or)에서 정통 프렌치 요리의 골격을 배웠다.
여기서 그는 열과 시간, 손끝의 감각이 만드는 미세한 차이가 어떻게 명품 요리를 탄생시키는지 체득했다.

이어 파리의 하얏트 콩코르드(Concorde Lafayette)에서는 거대한 호텔 주방이 요구하는 속도와 균형, 그리고 ‘흔들림 없는 일관성’이라는 기술의 미학을 익혔다.
1,000개 객실 규모의 호텔 주방은 그에게 신밧드의 거센 폭풍우와도 같은 세계였다.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을 그는 몸으로 익혔다.

그리고 전설적인 케이터링 하우스 포텔 & 샤보(Potel & Chabot).
베르사유 궁, 루브르 박물관—역사와 예술이 머물던 공간에서 연회를 책임지는 조리팀에 합류하면서 그는 또 하나의 진실을 깨달았다.
요리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문화에 봉사하는 경건한 행위라는 것.
바로 그 순간, 그의 여행은 단순한 ‘직업의 여정’에서 ‘예술의 항해’로 바뀌었다.


제3장. 영국—리더십이라는 새로운 대륙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난 영국 윌트셔에서 그는 가스트로펍의 헤드 셰프로 발탁된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레스토랑은 영국 남서부 최고 펍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 윌트셔 올해의 셰프 준우승

  • 고든 램지 스쿨 어워드 파이널리스트

라는 영예를 동시에 안았다.

이 시기 그는 깨달았다.
“요리사는 접시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
신밧드가 동료를 모아 항해를 이어갔듯, 존 역시 동료와 팀을 책임지는 리더로 성장했다.


제4장. 동쪽의 불과 허브의 나라—태국에서 열린 새로운 감각

어느 날 그의 나침반이 갑자기 동쪽을 향했다.
방콕에 도착한 순간, 그는 자신의 안에 잠들어 있던 ‘새로운 언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불, 허브, 발효, 신맛과 단맛이 섞여 폭발하는 조화—
태국은 요리의 세계가 이렇게 넓고도 깊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한 대륙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태국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고, 국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신밧드가 새로운 섬마다 ‘다음 항해의 기술’을 배웠듯, 존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감각을 품게 된다.


제5장. 스승이 되다—프랑스에 세운 두 개의 요리학교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바요와 캉(Caen)에 두 개의 요리학교를 설립했다.
8년 동안 그는 젊은 셰프들에게 프렌치 클래식부터 세계 요리까지 전수하며,
존 갈레라는 ‘여행자’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길을 비추는 ‘등대’가 되었다.


제6장. 대륙을 건너는 두 바퀴—태국·라오스·베트남 자전거 횡단

2020년 1월, 그는 또 하나의 대항해를 시작한다.
말도, 배도 아닌, 자전거 한 대에 의지한 여행.
땅의 결을 그대로 느끼고, 땀과 바람과 비 속에서 ‘음식의 언어’를 다시 들을 수 있는 여행이었다.

태국 — 균형의 혁명

국물, 허브, 발효, 숯불.
네 원소처럼 각기 다른 맛의 기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세계.
그는 여기서 ‘균형’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했다.

라오스 — 단순함의 깊이

강에서 건져 올린 생선, 주변에서 꺾어온 허브, 장작불.
단순함 속에서 더 깊은 풍미를 만들어내는 라오스의 삶은 그의 영혼을 잠시 멈춰 세웠다.

베트남 — 온기와 시간의 나라

베트남의 가정식은 기술보다 마음, 조리보다 기억이 앞섰다.
그는 깨달았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다.”

신밧드가 마지막 항해에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보물’임을 깨달았듯,
존 역시 이곳에서 요리의 본질을 다시 찾았다.


제7장. 호이안—운명적 만남, Vy Nguyen

팬데믹 속에서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순간, 그는 호이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중요한 동행자 Vy Nguyen을 만난다.

둘은 폐점된 레스토랑과 바를 스스로 고치기 시작했다.
버려진 나무를 주워 새 문을 만들고, 오래된 목재로 테이블을 다듬고, 프랑스 브라세리의 기품과 호이안의 따뜻함이 스며들도록 조명을 걸었다.
시간과 정성이 쌓이면서 세계에 단 하나뿐인 공간이 탄생했다.
메종 루시엥(Maison Lucien).


제8장. 메종 루시엥 — 한 인간의 항해가 완성되는 곳

메종 루시엥은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다.
그것은 존 갈레의 25년 간의 항해가 한 문장으로 완성되는 공간이다.

철학 1 – 프랑스의 정통성, 재료의 존엄

재료의 국적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순간’과 ‘가장 올바른 방식’이 기준.

철학 2 – 팜 투 테이블, 자연의 원형 그대로

베트남의 채소, 허브, 해산물, 방목육을 최대한 활용한다.
프랑스 테루아와 아시아 자연주의가 교차한다.

철학 3 – 품질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노르망디산 버터와 치즈, 전 품목 프랑스산 와인.
프랑스의 영혼과 베트남의 온기가 한 접시에서 만난다.


제9장. 그리고 마침내, 항해의 종착지에서 건네는 한마디

메종 루시엥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여행, 기억, 바람, 땀, 사랑, 그리고 인생의 문장을 건넨다.

신밧드가 바다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결국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듯,
존 갈레의 여정 역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음식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완성된다.”

그의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다.
오늘도 그는 또 다른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접시 위에서, 새로운 바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글로벌 외식정보=안형상 기자]

TAG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사이드 기본배너-유니세프
사이드 기본배너-국민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