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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을 더 받고도 “싸다”는 말을 듣는 기술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1-21 06:24:31
  • 수정 2025-11-21 06: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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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의 뇌를 매혹하는 가심비(價心比)의 경제학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합리적인 경제 주체,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만 원짜리 물건을 살 때 꼼꼼히 가격 비교를 하고, 천 원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바로 그 똑똑한 우리가 스타벅스에서는 원가 몇 백 원짜리 커피를 5,000원 주고 마시면서 “아, 오늘 하루의 위로가 된다”며 행복해한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 가격이 500원만 올라도 “변했다”며 발길을 끊어버리기도 하죠.


도대체 이 이중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이것이 바로 장사의 성패를 가르는 ‘본질’이라고 봅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많은 사장님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좋은 재료를 써서, 양을 많이 주고, 싸게 팔면 손님이 오겠지”라는 믿음입니다. 물론 훌륭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물리학적’ 접근이지 ‘심리학적’ 접근은 아닙니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로 복잡한 현상을 잘라내고 남은 장사의 단순한 진실은 이것입니다.


“손님은 ‘입’으로 먹기 전에 ‘뇌’로 먹는다.”


오늘은 원가(Cost)를 높이지 않고도, 손님의 뇌가 느끼는 가치(Value)를 극대화하여 1,000원을 더 받고도 “이 집 참 싸고 괜찮네”라는 말을 듣는, 다소 영악하지만 매우 필수적인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후각의 타격감: 기억을 지배하는 한 스푼


최근 제가 컨설팅했던 한 ‘시래기 국밥집’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집 국밥은 11,000원입니다. 국밥치고는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닙니다. 게다가 시래기 국밥이라는 메뉴의 특성상, 뚝배기에 담겨 나오면 그저 칙칙한 갈색 국물과 흐물흐물한 건더기만 보일 뿐입니다. 시각적으로 ‘비싼 음식’이라는 느낌을 주기 어렵죠.


이때 보통의 사장님들은 고민합니다. “고기를 더 넣어야 하나?” 하지만 고기를 더 넣으면 원가가 올라가고 마진이 줄어듭니다. ‘착한 사장님’이 되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저는 여기서 ‘후각의 타격감’을 제안했습니다.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주방에서 다 끓여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손님 상에 나가기 직전에 거친 들깨가루 한 스푼을 수북하게 고명으로 얹는 것입니다.


뚝배기의 열기가 들깨가루에 닿는 순간, 고소하고 강렬한 향이 확 피어오릅니다. 종업원이 뚝배기를 들고 주방에서 테이블로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손님은 이미 코로 국밥을 맛봅니다. 뇌는 즉각 반응합니다. ‘아, 냄새 좋다. 재료를 아끼지 않았구나. 이건 찐이다.’


들깨가루 한 스푼의 원가는 미미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심리적 포만감은 고기 몇 점을 더 넣어주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이것이 바로 돈을 쓰지 않고 가치를 높이는 기술입니다.




2. 시각의 건축학: 높이가 곧 가치다


또 다른 메뉴인 ‘뚝배기 불고기’를 볼까요? 보통 뚝불은 국물에 고기가 푹 잠겨서 나옵니다. 휘저어 보면 고기가 꽤 많은데도, 첫인상은 그저 ‘국물 요리’입니다. 손님은 자신이 지불한 11,000원이 아깝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건축학적 플레이팅’입니다. 같은 양의 고기라도 국물 속에 숨기지 말고, 뚝배기 중앙에 산처럼 높게 쌓아 올리는(Stacking) 겁니다. 그리고 그 위에 파채를 수북하게 올립니다.


붉은 고기 위로 솟아오른 싱싱한 초록 파채. 이 색감의 대비와 수직으로 솟은 부피감은 손님에게 시각적 충격을 줍니다. “와, 양 진짜 많다!”


사실 양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펼쳐 놓은 것과 쌓아 놓은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손님은 젓가락을 대기도 전에 이미 시각적으로 압도당했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이 찍히는 순간, 그 음식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타인에게 자랑할 만한 ‘콘텐츠’가 됩니다. 11,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게 되는 마법은 바로 이 ‘높이’에서 나옵니다.




3. 촉각의 미학: 혀끝에 닿는 농도


다시 시래기 국밥으로 돌아가 봅시다. 국물이 맑고 찰랑거리면 깔끔하긴 하지만, 어딘가 ‘가벼워’ 보입니다. 사람의 뇌는 본능적으로 걸쭉하고 진한 것을 ‘영양가가 풍부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물의 양을 조금 줄이더라도, 농도(Viscosity)를 높여 ‘스프’나 ‘죽’에 가깝게 걸쭉하게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숟가락으로 떴을 때 묵직하게 떨어지는 그 느낌. 입안에 넣었을 때 혀에 감기는 그 질감. 손님은 무의식중에 생각합니다. “오래 푹 끓였네. 이건 국이 아니라 보약이다.”


물을 덜 넣고 더 졸이는 것. 돈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조리법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도 음식의 격(格)이 달라집니다.




4. 프레이밍의 전환: 김밥이 요리가 되는 순간


가장 어려운 과제는 5,500원짜리 김밥이었습니다. 편의점 김밥이 2,000원대인 세상에서,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5,500원은 심리적 저항선이 높은 가격입니다. “김밥 한 줄이 뭐 이리 비싸?”라는 불평이 나오기 딱 좋습니다.


이 저항선을 돌파하려면 김밥을 ‘분식’이 아닌 ‘요리’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첫째, 윤기(Gloss)입니다. 손님상에 나가기 직전, 김밥 표면에 참기름을 한 번 더 바르고 통깨를 아낌없이 뿌립니다. 조명 아래서 김밥이 보석처럼 반짝거려야 합니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김밥이 아닙니다”라고 온몸으로 외쳐야 하죠.


둘째, 플레이팅과 소스입니다. 은박지에 둘둘 말아 주거나 투박한 플라스틱 접시에 담으면 영락없는 3,000원짜리입니다. 도자기 느낌이 나는 긴 접시에 김밥을 담고, 그 옆에 ‘마요네즈와 와사비’를 섞은 소스를 살짝 짜줍니다. 손님이 김밥을 소스에 찍어 먹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배 채우기 위한 김밥이 아닙니다. 하나의 퓨전 요리가 됩니다. 소스 원가 50원으로 김밥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겁니다.




5. 서사의 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마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기술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바로 ‘이야기(Story)’입니다.


이 식당의 벽면에는 말린 시래기 실물이 걸려 있고, 붓글씨로 쓴 메뉴판이 붙어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줄의 문구를 더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경상도 산간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60일을 얼고 녹기를 반복한, 거친 진짜 시래기입니다.”


이 문구가 왜 중요할까요? 시래기는 자칫하면 식감이 질길 수 있습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손님은 “이 집 시래기는 왜 이렇게 질겨? 손질을 잘 못했네”라고 불평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 문구를 읽고 난 뒤에는 반응이 180도 바뀝니다. “음, 역시 강원도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식감이 살아있네. 이게 진짜 자연의 맛이지.”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식감(Texture)을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장점으로 둔갑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위력입니다. 사장님이 새벽부터 고생해서 시래기를 삶았다는 사실은 손님이 알 바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고생을 ‘매력적인 이야기’로 번역해서 전달하면, 손님은 기꺼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지갑을 엽니다.




맺음말: 영악함이 곧 배려다


혹자는 이런 기술들을 두고 “손님을 속이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식점의 본질은 단순히 칼로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님에게 ‘만족스러운 한 끼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11,000원을 내고 먹었는데 “돈이 아깝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장님의 직무 유기 아닐까요?


오히려 적절한 연출과 디테일을 통해 손님이 “와, 오늘 정말 대접받았다”, “돈 잘 썼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서비스이자 배려입니다.


사장님 여러분, 너무 순진하게 원가 계산만 붙들고 있지 마십시오. 손님은 사장님의 원가표를 보러 오는 게 아닙니다. 사장님이 연출한 무대를 즐기러 오는 관객입니다.


그러니 부디 조금 더 영악해지십시오. 혀끝의 맛(Taste)을 넘어 눈과 코, 그리고 뇌를 만족시키는 감각(Sense)을 파십시오. 1,000원을 더 받고도 “싸다”는 말을 듣는 사장님이 되는 것. 그것이 팍팍한 자영업의 현실에서 사장님도 살고, 손님도 웃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상생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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