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여기 아주 익숙한 풍경이 있습니다. 손님이 카운터 앞에 서서 지갑을 엽니다. 우리는 익숙하게 카드를 받아 결제하고 영수증을 건네죠. 손님은 “잘 먹었습니다”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우리는 “네, 안녕히 가세요”라고 화답합니다. 이 짧은 의식과 함께 손님과 가게의 관계는 일단락됩니다. 자, 바로 이 순간을 한번 째려봅시다. 사장님들에게 이 순간은 그저 ‘매출’이 발생하는 지점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 순간은 한 고객과의 관계에 대한 ‘사망 선고’가 내려지거나,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재회 티켓’이 발권되는 운명의 갈림길입니다.
많은 사장님들이 여전히 ‘맛’이라는 성공 신화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맛만 있으면 손님은 알아서 찾아오고, 충성스러운 단골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 그 말의 유효기간은 거의 끝났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어지간한 맛으로 명함 내밀기는 어려운 시절이 되었습니다. 맛은 이제 우리 가게를 선택지에 올려놓는 ‘기본 자격’이지, 최종 선택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매력’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객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경제학의 탈을 쓴 심리학 이론인 ‘사회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거창한 이름에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인간은 어떤 관계에서든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손익계산서’를 작성한다는 겁니다. 내가 이 관계에 쏟아붓는 ‘비용(Cost)’보다 얻게 되는 ‘보상(Reward)’이 더 크다고 판단될 때,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한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죠.
레스토랑과 고객의 관계도 이 저울 위에서 냉정하게 평가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용’과 ‘보상’의 범주를 넓게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손님이 지불하는 ‘비용’은 단지 영수증에 찍힌 음식값만이 아닙니다. 가게를 찾아오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 시끄러운 옆 테이블 때문에 감내해야 했던 정신적 소음, 불친절한 직원의 응대로 상해버린 감정까지 모두 비용 항목에 기입됩니다.
반대로 손님이 얻는 ‘보상’ 역시 음식의 맛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공간의 경험, “오랜만에 오셨네요”라며 나를 알아봐 주는 주인의 따뜻한 인정,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희소성과 스토리, 그리고 ‘오늘 정말 만족스러운 소비를 했다’는 심리적 뿌듯함까지 전부 보상 항목에 기록됩니다.
고객이 계산을 마치는 순간, 바로 이 복잡한 손익계산이 끝나는 시점입니다. 그리고 이때 ‘순이익’이 남았다고 판단한 고객만이 ‘재방문’이라는 투자를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단골이 ‘계산’이 끝난 뒤에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 사장님들의 고민은 명확해집니다. 어떻게 고객의 손익계산서에서 ‘비용’ 항목을 줄이고, ‘보상’ 항목을 극대화할 것인가. 여기서 많은 분들이 ‘가격 할인’이라는 손쉬운 길로 빠지곤 합니다. 물론 비용을 직접적으로 줄여주니 단기적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가격으로 얻은 고객은 더 싼 가격에 언제든 떠나기 마련입니다. ‘가성비’의 늪에 빠지면 단골이 아닌 ‘체리 피커’만 들끓게 될 뿐입니다.
진정한 단골을 원한다면 우리는 ‘가심비(價心比)’, 즉 심리적 보상을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서울 선릉의 한 시래기국 전문점은 직접 담근 토종 된장의 깊은 맛과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라는 스토리를 팝니다. 고객은 한 끼 식사 비용으로, 프랜차이즈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독보적인 경험과 건강한 자부심을 ‘보상’으로 얻어갑니다.
미국의 패스트푸드점 ‘칙필레’는 “My Pleasure(도와드리게 되어 기쁩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친절함을 무기로 삼습니다. 고객은 치킨 샌드위치 값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확실한 감정적 서비스를 ‘보상’으로 챙겨갑니다. 이 가게들에서 고객의 손익계산서는 언제나 ‘흑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카운터에 서서 고객의 카드를 받아봅시다. 우리는 지금 얼마의 ‘매출’을 올린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마음의 손익계산서’에 대한 최종 결재를 앞두고 있는 겁니다. 고객이 건네는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이, 의례적인 빈말을 넘어 그의 손익계산서가 ‘흑자’임을 알리는 만족의 감탄사가 되게 할 수만 있다면, 그 영수증은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재회 티켓이 되어 그의 지갑 속에 고이 간직될 것입니다. 사장님들, 이제 음식 장사를 넘어 고객의 마음에 ‘가치’를 투자하는 현명한 투자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