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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레스토랑은 손님과 '썸'을 타고 있습니까?
  • 진익준
  • 등록 2025-09-10 09: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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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



혹시 ‘소개팅’ 기억나십니까? 어색한 공기 속에서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말을 할지,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바로 그 순간 말입니다. 고객이 처음 우리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이 바로 그 소개팅 자리와 놀랍도록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고객은 음식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집, 괜찮을까?’, ‘돈 아깝지 않을까?’, ‘다음에 또 올 만할까?’ 이 불확실성 가득한 탐색전에서 고객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만남은 그저 그런 ‘한 끼 식사’로 끝나고 말 겁니다. 애프터 신청은커녕, 번호조차 저장되지 않는 사이가 되는 것이죠.


많은 사장님들이 ‘맛’만 있으면 손님은 다시 온다고 믿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기본이죠. 하지만 맛있는 집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요? 대한민국 식당들, 이제 상향 평준화될 만큼 되었습니다. 이제 맛은 연애로 치면 ‘준수한 외모’ 정도랄까요? 호감을 주는 시작점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고객의 발걸음을 다시 우리 가게로 향하게 만들까요? 심리학자 어윈 알트만과 달마스 테일러는 ‘사회 침투 이론(Social Penetration Theory)’이라는 재미있는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이름은 좀 어렵습니다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 단계씩 깊어진다는 겁니다. 겉껍질에 해당하는 이름이나 직업을 나누는 단계를 지나, 속으로 들어갈수록 취미나 가치관, 더 나아가 속 깊은 비밀까지 공유하며 친밀해진다는 것이죠.


이 ‘양파의 법칙’은 레스토랑과 고객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고객과의 관계를 ‘썸’에서 ‘연인’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우리 가게의 양파 껍질을 어떻게, 언제, 얼마나 벗어서 보여줄지 영리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1단계: 첫 만남,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매너’


첫 소개팅에서 대뜸 자기 자랑만 늘어놓거나,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습니다. 첫 방문 고객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은 낯선 공간에서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느낍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고객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세심한 ‘매너’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 감소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낯선 상황에서 부정적 감정을 줄여주면 호감도가 급상승한다는 거죠.


깨끗하게 정돈된 테이블, 명확한 메뉴 설명, 밝은 미소로 건네는 첫인사. 이런 것들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결정 장애를 겪는 고객에게 “저희 집은 처음이시면 이 메뉴가 가장 인기가 좋습니다”라며 자신감 있게 추천해 주는 모습은 고객의 불안을 ‘신뢰’로 바꿔놓는 결정적 한 방이 될 수 있습니다.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작은 배려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살짝 여는 열쇠입니다.



2단계: 두 번째 만남, ‘나’를 기억해주는 ‘특별함’


어렵게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이때 상대가 지난번 대화를 기억하며 “그때 말씀하신 영화, 재미있게 보셨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떻습니까? ‘아, 이 사람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느끼며 마음이 기우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고객의 재방문이 바로 이 두 번째 만남입니다.


“또 오셨네요! 지난번 그 자리에 앉으시겠어요?”


이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나는 수많은 손님 중 한 명인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왕십리의 작은 스시집 ‘스시도쿠’가 카카오톡 채널로 15만 명의 친구를 만들며 고객과 꾸준히 ‘썸’을 이어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 것입니다. 포인트 적립이라는 사무적 관계를 넘어, ‘친구’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안부를 묻고 가게의 소식을 전하며 관계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죠. 고객은 더 이상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나와 소통하는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3단계: 우리 이제 ‘연인’,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는 ‘단골’


‘썸’이 무르익으면 연인이 됩니다. 연인 사이에는 둘만 아는 비밀이 있고, 특별한 애칭이 생깁니다. 레스토랑과 고객의 관계에도 이런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단골’이라 부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우리 가게의 가장 깊은 양파 속살을 보여줄 때입니다.


“사장님, 오늘 좋은 재료 들어온 거 있어요?”

“마침 오늘 완도에서 자연산 전복이 막 올라왔는데, 메뉴에는 없지만 특별히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권하고, 새로 들여온 와인을 살짝 맛보여주는 행위. 이것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 가게의 비밀을 공유할 만큼 특별한 사람입니다”라는 선언입니다. 고객은 이 ‘특권’을 통해 가게에 대한 단순한 만족을 넘어 깊은 애정과 소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스타벅스가 ‘골드 레벨’ 고객의 이름을 컵에 적어주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그냥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소중한 파트너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는 것이죠.


자,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은 지금 고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소개팅 상대 중 하나입니까, 아니면 설레는 ‘썸’을 거쳐 이제 막 연인이 되려는 참입니까? 음식을 만드는 기술만큼이나, 고객의 마음이라는 양파 껍질을 벗겨내는 관계의 기술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입니다. 결국 마지막에 고객의 마음에 남는 것은 음식의 맛과 더불어,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 바로 그 설레는 경험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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