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여기 한 식당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외곽,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죠. 사장 K씨는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가락시장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허브는 두 시간 거리의 농장에서 직접 공수했습니다. 토마토소스는 시판 제품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듯 48시간을 꼬박 끓여 만들었죠. 테이블은 고작 여섯 개. 그는 돈을 버는 것보다 ‘진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습니다.
이 얼마나 숭고한 장인정신입니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언론은 이런 가게를 ‘착한 식당’이라 부르며 칭송하고,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저런 분들이 꼭 성공해야 한다고 응원하게 되죠. 그런데 말입니다, 1년 뒤 이 레스토랑은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남은 것은 K사장의 상처와 수천만 원의 빚뿐이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이렇게나 ‘옳은’ 일을 했는데, 왜 망한 걸까요? 많은 분들이 ‘경기가 안 좋아서’, ‘목이 나빠서’ 같은 진단을 내놓을지 모릅니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는 오늘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K사장을 실패로 이끈 진짜 범인은 어쩌면 그의 ‘숭고한 열정’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악당을 하나 만나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이 ‘도덕주의적 오류(Moralistic Fallacy)’라고 부르는 녀석이죠. 말이 좀 어려우니 저는 이걸 사장님들의 ‘착한 착각’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게 뭐냐고요? “세상이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방식대로, 실제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어버리는 지적 습관”입니다.
K사장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1. 전제: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을 다하는 것은 ‘선(善)하고 옳은’ 일이다.
2. 당위: 따라서 이런 가게는 마땅히 ‘성공해야만 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죠. 그런데 K사장은 여기서 논리의 다리도 없이 저 멀리 점프해버립니다.
3. 결론: 그러므로 내 가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보이십니까? ‘성공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바람이 어느새 ‘성공할 것이다’라는 사실적 예측으로 둔갑했습니다. 중간 과정이 없습니다. ‘당위’의 세계에서 ‘사실’의 세계로 건너뛰는 묻지마 점프죠. 이 ‘착한 착각’이 바로 K사장의 눈을 가린 주범입니다.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도덕적 만족감에 취해, 시장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보내는 신호를 애써 무시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 착각은 달콤한 위안과 강력한 방어기제를 제공합니다.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될 핑계를 만들어주죠.
메뉴 A의 판매량이 저조하다고 칩시다. 보통의 경영자라면 ‘가격이 비싼가?’, ‘맛이 대중적이지 않은가?’, ‘이 동네 상권과 맞지 않나?’ 같은 질문을 던지며 원인을 분석할 겁니다. 하지만 ‘착한 착각’에 빠진 K사장은 다릅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손님들이 아직 내 요리의 깊은 뜻을 몰라주는군. 미식 수준이 아직 낮은 탓이야.” 문제의 원인이 시장이 아닌, 시장을 탓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죠.
SNS에 부정적인 리뷰가 달리면 어떨까요? “내 정성을 몰라주는 야박한 손님 같으니!”라며 분노합니다. ‘고객의 피드백’이라는 귀한 데이터를 ‘나의 도덕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 순간, 가게를 살릴 수 있는 소중한 정보는 소음이 되고, 사장님은 고립된 성 안의 외로운 장인이 되어갑니다.
여러분, 시험 범위에 없는 과목만 밤새 공부한 학생이 성적이 나쁘게 나온 뒤 “이 시험은 틀려먹었어!”라고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시장이라는 시험은 사장님의 ‘노력’이나 ‘선한 의도’를 채점하지 않습니다. 오직 고객의 ‘선택’이라는 답안지만을 채점할 뿐입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사업의 첫걸음입니다.
그럼 열정 없이, 철학 없이 장사하라는 말이냐고요? 천만에요. 제가 제안하는 것은 열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열정을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자는 겁니다. ‘착한 사장’에서 ‘똑똑한 사장’으로 진화하자는 것이죠.
그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차가운 데이터’와 친구가 되는 겁니다.
데이터는 사장님의 열정을 모욕하기 위해 존재하는 숫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이 우리에게 보내는 절절한 연애편지에 가깝습니다. “사장님, 제발 저 좀 봐주세요. 이렇게 해주시면 제가 사장님을 더 사랑해 드릴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는 고객의 목소리죠.
오늘 가장 많이 팔린 메뉴와 가장 적게 팔린 메뉴가 무엇인지, 재방문 고객과 신규 고객의 비율은 어떤지, 어느 시간대에 손님이 몰리는지. 이 숫자들 속에 K사장이 놓쳤던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48시간짜리 토마토소스는 2만 원짜리 파스타가 아니라, 8천 원짜리 토마토 수프로 팔았을 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진심’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 진심을 전달하는 ‘방식’이 시장과 어긋났던 것이죠.
진정한 열정은 “내 요리를 먹어라!”라고 외치는 오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라고 집요하게 묻고, 듣고, 관찰하고, 또 적용하는 겸손함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셰프의 철학은 고객의 지갑 속에서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사장님, 당신의 열정은 숭고합니다. 당신의 정성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이제 그 ‘착한 착각’에서 깨어나, 당신의 위대한 열정을 ‘성공하는 현실’로 만들어낼 지혜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열정은 뜨겁게 간직하되, 머리는 차갑게, 그리고 두 귀는 항상 고객을 향해 활짝 열어두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망하지 않는 열정의 진짜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