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가장 뜨거운 거리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있다. 그중에서도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앞의 줄은 단순한 '맛집 대기'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누군가는 허비하는 시간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내야 할 '미션'처럼 여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기꺼이 한 시간 넘게 기다리게 만드는 걸까? 그 답은 베이글 안에 있지 않다. 바로 그 줄에 서 있는 '나'에게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현상의 근간에는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심리가 있다. 우리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특별한 페르소나(Persona)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
그렇다면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페르소나는 무엇일까? 이곳은 단순히 '맛있는 베이글 가게'가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트렌디한 방식으로 유럽의 감성을 즐기는 공간'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빛바랜 듯한 빈티지 인테리어, 무심한 듯 멋스러운 서체, 감각적으로 쌓아 올린 베이글 디스플레이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잘 짜인 영화 세트처럼 이 페르소나를 견고하게 만든다.
소비자는 그곳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고, 베이글을 포장해 나오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오픈런에 동참하는 나 =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독특한 미적 감성을 향유할 줄 아는 '힙한' 나"
결국 우리는 9천 원짜리 베이글 샌드위치만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표현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시간의 기다림을 감수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동일시’의 힘이다.
'힙스터가 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는 이토록 거대한 '오픈런' 현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욕망에 불을 붙이고 사람들을 실제 행동으로 이끄는 강력한 네 가지 증폭 장치가 터보 엔진처럼 작동한다.
A. 희소성: "이건 아무나 갖는 게 아니야"
인간은 갖기 어려운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본능이 있다. 한 시간의 기다림과 품절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베이글을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경험’으로 격상시킨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어낸 베이글은 단순한 빵을 넘어 ‘획득의 기쁨’과 ‘독점적 만족감’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품게 된다.
B. 사회적 증거: "저렇게 많은 사람이 기다린다고? 그럼 확실해!"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앞의 긴 줄은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기다린다면 틀림없이 대단한 곳일 거야.’ 내 선택에 대한 불확실성은 내 앞에 선 50명의 사람들을 보며 확신으로 바뀐다. 나의 기다림은 정당화되고, 내 뒤로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며 그 확신은 더욱 단단해진다. 군중은 군중을 부른다.
C. FOMO: "나만 이 대화에 낄 수 없을지도 몰라"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운 런던 베이글 뮤지엄 ‘인증샷’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박이다. 나만 이 경험을 놓치고, 친구들의 대화에 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즉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이 우리를 매장으로 향하게 한다. '오픈런'은 이 시대의 트렌드에서 소외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인 셈이다.
D. 경험과 인증: "기다림은 '인증샷'의 스토리가 된다"
오늘날 소비의 중심은 ‘소유’에서 ‘경험’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SNS에 ‘인증’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모든 것은 ‘인증샷’에 최적화되어 있다. 감각적인 공간, 예쁜 포장지, 쌓여있는 베이글 더미 앞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행위 자체가 소비의 핵심 목적이 된다. 놀랍게도, 한 시간의 지루한 기다림은 오히려 그 ‘인증샷’의 가치를 높여주는 멋진 스토리가 되어준다. “나 이거 한 시간 기다려서 샀어!”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오픈런 현상은 우연히 만들어진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심리적 시너지다.
(동일시) 소비자는 ‘힙한 감성’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에 자신을 투영하고 싶어 한다.
(사회적 증거) 이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긴 줄은 ‘이곳은 최고’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희소성) 긴 줄은 이 경험의 희소성을 높여, 기다림 끝에 얻는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FOMO & 인증) SNS 속 인증샷은 더 많은 사람에게 FOMO를 자극하고, 이들을 다시 줄 서게 만들며 사이클을 무한히 강화한다.
결국 ‘동일시’는 우리가 그곳에 가고 싶게 만드는 근본적인 ‘왜(Why)’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희소성, 사회적 증거, FOMO, 인증샷 문화는 그 욕망을 실제 행동으로 바꾸고 현상을 폭발적으로 만드는 강력한 ‘어떻게(How)’에 해당한다.
오늘도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본다면, 그들을 단지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보지 말자.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매하고, 경험하고, 증명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정말 사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베이글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