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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픽션] 포화된 상권의 마지막 한 자리, 1화. 300억 짜리 쓰레기통과 데이터의 칼날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1-19 09:17:02
  • 수정 2025-11-19 09: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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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의 세계는 꿈을 파는 곳이 아니라, 꿈이 부서지는 전쟁터입니다. 화려한 간판이 늘어설수록 그림자는 길어지고, 결국 숫자는 정직하게 누구의 꿈이 좌절되었는지를 가리킵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1. 망각된 제국의 그림자


‘맛있는 유행’ 본사 회의실은 그 이름과 달리 전혀 맛이 없었다. 습도 50%, 온도 24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이 공간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생기 넘치는 도시의 풍경과 완전히 단절된, 일종의 고급 밀실이었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맛있는 유행’은 한때 전설이었다. ‘소자본, 초간단 조리 시스템’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5년간 폭발적인 속도로 매장을 늘렸다. 그 결과, 지금 그들은 전국에 1,200개가 넘는 가맹점을 거느린 겉보기에 거대한 제국이었다.


하지만 제국은 속으로 곪고 있었다. 회의실 대형 스크린에 뜬 숫자들이 그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 ‘가맹점 연평균 폐점률’: 18.5%

  • ‘가맹점 월평균 순이익률 하락폭(YoY)’: -9.2%

  • ‘본사 미수금(원자재 대금)’ : 300억 원


“이 미수금 300억 원이 결국 우리 제국의 가장 화려한 쓰레기통입니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방금 발언을 한 젊은 여성에게 쏠렸다. 서이수. 30대 중반의 나이, 단정한 검은 정장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 그녀는 최근 본사가 파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긴급 수혈한 외부 영입 전략 컨설턴트였다.


“김 회장님, 그리고 경영진 여러분. 지난 5년간 우리는 ‘가맹점 수 확대’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매몰되었습니다. 로열티는 낮추고, 가맹비를 최소화했으며, 오직 물류 마진으로만 수익을 냈습니다. 이 모델은 가맹점이 새로 생길 때만 유효합니다.”


서이수는 손에 든 레이저 포인터로 스크린 구석에 있는 그래프를 가리켰다. ‘신규 가맹점 개설 수’ 그래프는 2년 전 정점을 찍은 후 급격히 꺾여 이제 거의 바닥에 붙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새로 점포를 열 곳도, 돈을 빌려 창업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류 마진에 의존하는 우리의 구조는 점포 하나하나가 망가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 철학의 문제입니다.”


김 회장, 곧 출점파의 수장인 그는 굵은 목소리로 응수했다. “서 이사, 당신이 말하는 경영 철학이 대체 뭡니까? 우리는 지난 20년간 이 방식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장 물류 시스템을 개선하고, 불필요한 인력 몇 명 자르는 것이 빠르지 않겠소?”


서이수는 김 회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으나, 그 미소에는 따뜻함 대신 데이터의 냉기가 서려 있었다.



2. '수익의 밀도'를 증명하라


“김 회장님. 저희가 20년간 해온 방식은 이제 ‘낡은 유행’이 되었습니다. 저는 회장님의 말씀처럼 물류 시스템을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수술’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거대한 제국의 경영 철학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서이수는 테이블에 태블릿을 내려놓고 회의실을 둘러봤다. 모두들 불안하거나 적대적인 눈빛이었다. 그들은 모두 ‘출점 속도’가 곧 경쟁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저는 앞으로 ‘수익의 밀도(Density of Profit)’를 증명할 것입니다. 즉, ‘가장 많은 매장을 여는 것’ 대신 '가장 높은 순이익을 창출하는 단 하나의 매장’을 만들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준비해온 보고서를 펼쳤다. 보고서의 표지에는 단 하나의 숫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3호점.


“저희는 미수금 300억 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가장 높은 폐점 위험률을 가진 상권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낮은 매출액과 최악의 재고 손실률을 기록하며 본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점포를 선정했습니다.”


스크린에 다음 이미지가 떴다. 낡은 상가 건물 1층의 한 매장. 간판은 바래고, 유리창에는 배달 주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유행분식 3호점.


“이 점포가 위치한 ‘낙성대 헬게이트 상권’은 동일 업종 경쟁사가 10개가 넘고, 일일 유동인구 대비 매출액이 가장 낮은 곳입니다. 이 3호점은 현재 본사의 재고 처분 창고이자, 점주의 희망이 꺾인 절망의 아이콘입니다.”

서이수는 차분했지만 단호하게 선언했다.


“저에게 100일의 시간을 주십시오. 저는 이 3호점을 본사 전체에서 ‘점포당 순이익률’ 1위로 만들 것입니다. 제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가맹점 수 확대’라는 낡은 유행을 버리고 ‘가맹점 수익 증대’라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김 회장의 얼굴은 격분과 당황스러움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단 하나를 살리자고? 100일씩이나? 서 이사! 우리 회사가 지금 그럴 시간이 있습니까! 당신이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제가 실패하면, 본사가 원하는 대로 물류 시스템 개선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제가 직접 집행하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서이수는 김 회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당신들이 20년간 해온 방식보다, 내가 100일간 데이터로 증명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본사의 미래는 이제 가장 낡고 절망적인 '유행분식 3호점'의 낡은 간판에 걸리게 되었다.





[경영 인사이트]


'규모의 경제'라는 함정: 많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빠지는 오류는 '가맹점 수'를 곧 '기업 가치'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물류 마진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만 일시적으로 유효합니다. 시장이 과밀화되고 신규 출점이 막힐 경우, 가맹점 하나하나의 낮은 수익률과 폐점은 곧바로 본사의 미수금과 부채로 돌아옵니다. 기업 가치는 외형적인 '수(Quantity)'가 아니라, 개별 점포가 창출하는 '밀도(Density of Profit)''생존율(Sustainability)'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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