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결단해야 했다.
'망할 것인가, 아니면 망할 각오로 바꿀 것인가.'
김철수는 마지막 남은 비상금 통장을 깼다. '달빛한잔'의 문에는 [내부 수리 및 재정비로 3일간 임시 휴업합니다]라는 종이가 나붙었다. 인스타그램 감성으로 가득 찼던 홀의 모든 가구는 한쪽으로 밀려났고, 바닥에는 먼지 방지용 비닐이 깔렸다.
전쟁은 4.43평의 주방에서 시작되었다.
"전부 뜯어내세요."
한지원의 말에, 철거 인부들이 낡은 싱크대와 선반을 부수기 시작했다. '와장창-'
김철수가 그토록 '공간 차지한다'고 불평했던 45박스 냉동고가 뜯겨져 나가고, 4.43평의 맨바닥이 드러났다.
"사장님.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건 '인테리어'가 아닙니다. '수술'이에요.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수술."
한지원은 냅킨 속의 그 그림을, 실제 1:1 사이즈의 설계도로 펼쳐 보였다.
"제1 원칙. '더러운 동선'과 '깨끗한 동선'의 완벽한 분리."
그녀는 주방 입구 오른편, 가장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홀에서 들어오는 '퇴식'은 무조건 여기서 끝납니다. 이 구역에 설거지통과 식기세척기를 함께 둡니다. 이 구역을 벗어난 그릇은 모두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겁니다."
"잠깐만요, 팀장님. 식기세척기요? 이 좁은 데다요? 그리고 저 그거 살 돈..."
"김 사장."
한지원이 300만 원짜리 초소형 업소용 식기세척기 카탈로그를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300만 원. 비싸죠. 근데 사장님, 어제 민수 같은 알바생 시급 얼마 주고 썼어요?"
"만... 만 원이요."
"하루 5시간, 주 5일이면 월 110만 원이네요. 그 알바생이 설거지만 해요? 아니죠. 홀도 보고, 튀김도 만지작거리고, 불평도 하죠. 근데 이 녀석은요?"
그녀가 식기세척기를 툭툭 쳤다.
"300만 원 한 번 내면, 그 알바생의 '설거지 업무'를 평생 대신해 줍니다. 아프다고 결근 안 하죠, 시급 올려달라고 안 하죠, 불평 안 하죠. 심지어 사장님보다 더 깨끗하게 씻어요. 이건 '비용'이 아닙니다. 사장님이 고용할 수 있는 가장 값싸고 성실한 '직원'에 대한 '투자'예요. 이 직원을 고용할지 말지는 사장님이 결정하세요."
"...하겠습니다."
3일간의 공사는 지옥 같았다.
모든 배관과 가스관의 위치가 바뀌었다.
[저장] 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식자재 냉장고가 들어왔다.
[전처리] 그 옆에 '깨끗한' 싱크대가 놓였다.
[조리] 그리고 'L'자로 꺾인 곳에, 한지원이 별표를 쳤던 '하부 서랍식 냉장고'가 장착된 가스렌지가 놓였다. 그 옆에는 튀김기가 완벽한 높이로 빌트인 되었다.
[배식] 조리대 바로 앞은 홀로 나가는 '배식대'가 되었다.
모든 동선은 물이 흐르듯, [저장 → 전처리 → 조리 → 배식]의 한 방향으로만 이어졌다.
그리고 그 흐름의 완벽한 반대편 섬처럼, [퇴식/세척] 구역이 고립되어 존재했다.
3일 뒤.
공사가 끝난 주방은... 이상하게도 전보다 더 좁아 보였다. 새로운 조리대와 선반이 공간을 더 타이트하게 채웠기 때문이다.
"팀장님... 이거... 전보다 더 좁아진 것 같은데요."
김철수의 목소리가 불안감에 떨렸다.
한지원은 주방 입구에 팔짱을 끼고 서서, 새로 태어난 공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니요, 김 사장."
그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좁아진 게 아니라, '집중'된 겁니다. 쓸데없는 '낭비'가 사라진 거죠."
"자, 이제 들어가시죠. 당신의 '전투기 조종석'입니다."
[경영 인사이트 4]
자본 지출(CAPEX)과 운영 비용(OPEX)을 혼동해선 안 된다. 많은 사장들이 초기 투자비(CAPEX)를 아끼려다, 매일 피눈물 같은 운영비(OPEX) 손실을 감당한다. 잘못된 주방은 매일 '인건비 낭비', '재료 로스', '고객 이탈'이라는 막대한 운영 손실을 발생시킨다. 잘 설계된 주방과 자동화 기기에 대한 투자는, 미래의 손실을 막고 이익을 창출하는 가장 확실한 '자본 지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