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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연재 소설] 4.43평, 나의 지옥이자 천국, 제3화: "당신의 걸음걸이가 돈이다"
  • 진익준
  • 등록 2025-11-09 14: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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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김철수는 잠들지 못했다.


'한 달 안에 망한다.'


한지원의 그 한 마디가 독처럼 온몸에 퍼져나갔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아름다운 홀. 그리고... '독'을 만드는 주방.


다음 날, 그는 '달빛한잔'의 문을 닫았다. [개인 사정으로 하루 쉽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알아낸 '에이치원(H-One) 키친 컨설팅'이라는 작은 사무실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어쩐 일이시죠, 김철수 사장님."



한지원은 그가 올 줄 알았다는 듯, 차가운 믹스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



김철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존심, 분노, 억울함.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강렬한 '절박함'.


그는 34년 인생에 처음으로, 타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한지원은 그를 내려다보며, 무릎을 꿇은 이유를 정확히 꿰뚫었다.



"제가 취미 활동을 고쳐주진 않습니다. 저는 '사업'을 컨설팅해요. 사장님은 지금 예쁜 가게 놀이에 심취한 아마추어일 뿐이고요."



"제 인생입니다! 제 모든 것입니다!"



김철수의 절규에, 한지원은 처음으로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일어나시죠. 오늘 저녁 7시. 가게 문 닫고 기다리세요."



그날 저녁 7시. '달빛한잔'은 문을 닫았다. 한지원은 스톱워치와 줄자, 그리고 두꺼운 노트를 들고 나타났다.



"자, 김 사장. 어제 보니까 주력 메뉴가 닭볶음탕, 파전, 오뎅탕... 이 3가지더군요. 지금부터 실제 손님에게 나가는 것처럼, 그 3가지를 순서대로 만들어보세요."



"네?"



"왜요? 설마 어제 그 난리 통에 레시피도 다 까먹었어요?"



"아닙니다!"



김철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화구 앞에 섰다. '실력'을 보여주리라.



"시작."



한지원의 스톱워치가 눌렸다.



"스톱."



닭볶음탕용 닭을 꺼내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한지원의 목소리가 그의 등을 갈랐다.



"지금 뭐 했어요?"



"닭... 꺼내려고요."



"왜 '걸어요'?"



한지원이 줄자로 김철수의 발부터 냉장고 문까지의 거리를 쟀다.



"1.8미터. 왕복 3.6미터. 사장님은 지금 요리 하나 하려고 3.6미터를 '산책'하신 겁니다. 다시."



"시작."



김철수는 닭을 꺼내 웍에 올렸다.



"스톱."



"왜... 왜 또..."



"파전 반죽은 왜 저기 있죠? 닭볶음탕이랑 파전은 가장 많이 나가는 세트 메뉴일 텐데, 동선이 완전히 정반대잖아요. 사장님은 지금 주방 안에서 '지그재그'로 춤추고 있어요."



한지원은 그의 모든 움직임을 '걸음'과 '초' 단위로 분해했다.



"사장님. 닭볶음탕 하나 만드는데 22걸음을 걸으셨네요. 스톱워치 기록은 4분 30초. 하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12분. 왜인지 알아요? 중간에 '생각'하느라, '찾느라', '비키느라' 멈춘 시간이 8분이에요."



"......"



"사장님은 지금 요리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낭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한지원은 바 테이블의 냅킨 한 장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펜을 꺼내 4.43평의 네모를 그렸다.



그녀는 김철수의 현재 동선을 붉은 펜으로 그렸다.



[냉장고]에서 [화구]로, [화구]에서 [개수대]로, [개수대]에서 다시 [선반 냉장고]로, [선반 냉장고]에서 [화구]로...



4.43평의 네모는, 순식간에 수십 개의 선이 뒤엉킨 거미줄, 아니 '혼돈' 그 자체가 되었다.



"이게 사장님의 '워크플로우(Workflow)'예요. 아니, '워크'는 없고 '카오스'만 있네요. 이게 사장님 돈과 시간을 다 까먹고 있는 겁니다."



그녀는 그 냅킨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새 냅킨에 다시 네모를 그렸다.

이번에는 파란 펜이었다.



그녀는 화살표를 그었다.


[주방 입구(저장/전처리)] → [조리대(화구/튀김기)] → [배식대]



아주 단순한, 'L'자 형태의 한 방향 흐름이었다.



"주방은 '테트리스'가 아닙니다. '흐름'을 설계하는 거죠."



그녀는 화구 바로 아래에 작은 사각형을 그리고 별표를 쳤다.



"이게 뭡니까?"



"가스렌지 하부 서랍식 냉장고. 조리사는 불 앞을 떠나는 순간 패배합니다. '제로 스텝(Zero-Step)'.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혹은 몸만 돌려서 모든 핵심 재료를 꺼낼 수 있어야 해요."



"......"



"F-22 랩터 전투기 조종석을 본 적 있어요? 조종사가 미사일 쏘려고 일어나서 뒤쪽 캐비닛을 뒤지지 않아요. 모든 스위치가 손끝에 있죠. 사장님의 주방은 저가항공사 이코노미석이 아니라, F-22 조종석이 되어야 합니다."



김철수는 홀린 듯 냅킨을 바라봤다. 그 작은 그림 안에, 어제 자신이 겪었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걸 다 뜯어고치려면... 저... 돈이... 공사할 돈이 없습니다."



김철수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떨렸다.


한지원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얼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폐업 신고할 돈은 있으시고요?"







[경영 인사이트 3]


'린 매뉴팩처링(Lean Manufacturing)', 즉 도요타 생산 방식의 핵심은 '무다(Muda)', 즉 '낭비'를 제거하는 것이다. 외식업 주방에서 가장 큰 낭비는 '불필요한 걸음'이다. 메뉴 하나를 만드는 데 20걸음을 걷는 주방과 2걸음 만에 끝내는 주방의 생산성은 10배 차이다. 당신의 걸음걸이가 곧 원가이고, 당신의 동선이 곧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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