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런던베이글뮤지엄(LBM)' 앞의 긴 줄은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런던의 힙한 가게에 와 있는 듯한' 감각, SNS에 올릴 완벽한 인증샷, 그 '경험'을 소비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지불했다. 이 '경험'은 2,000억 원의 기업 가치로 환산되며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신화의 이면, 주 80시간 노동, 휴게시간 없는 15시간 연속 근무, 그리고 끝내 20대 직원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참혹한 민낯이 드러났다. 소비자가 누린 환상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생산한 노동자의 절망적인 '경험'은 이토록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리는 이 배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M&A의 압박, 경영진의 탐욕 같은 복잡한 요소를 걷어내고 '오컴의 면도날'로 본질을 파고들면, 이 비극은 '소비자의 힙한 경험을 위해 노동자의 경험을 착취한' 명백한 구조적 문제로 귀결된다.
오컴의 면도날로 LBM의 성공을 분석하면, 그들은 '제품(베이글)'을 판 것이 아니라 '경험(Experience)'을 팔았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과 마주한다. 이국적인 인테리어, 감각적인 브랜딩, '수제(Artisan)' 이미지로 무장한 LBM은 소비자에게 '나는 이런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이는 단순한 F&B 비즈니스를 넘어선다. 빵은 이 '경험'을 위한 매개체이자 '굿즈'였다. 이 전략은 완벽히 성공했고 LBM을 신드롬의 반열에 올렸다.
문제는 '경험'이라는 상품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다는 데 있다. 특히 LBM이 내세운 '수제' 이미지는 더욱 그렇다. 이 '힙한 경험'은 누군가가 매장에서 직접 반죽하고, 굽고, 진열하고, 응대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방식으로만 생산될 수 있었다.
여기서 LBM의 두 번째 '오컴의 면도날' 분석, 즉 '위기의 본질'이 등장한다. LBM의 위기는 '폭발적인 성장 속도(수요)'가 '운영 시스템(공급)'의 한계를 압도하며 발생했다.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시스템(센트럴 키친 고도화, 자동화, 인력 관리)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LBM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가장 원시적인 방법, 즉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을 택했다.
소비자가 '힙한 경험'에 열광할수록, 그 수요를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경험'은 처참해졌다. 소비자의 '갓 구운 빵' 경험을 위해, 노동자는 15시간을 굶어가며 빵을 구워야 했다. 소비자의 '이국적인 공간' 경험을 위해, 노동자는 3년간 63건의 산재가 발생하는 위험한 공간을 감내해야 했다.
결국, 소비자가 지불한 비용으로 감당되지 못한 '힙한 경험'의 진짜 비용은, 현장 노동자들의 건강과 시간, 그리고 생명이라는 '경험'으로 전가된 것이다.
이 비극은 LBM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감성'과 '경험'을 파는 많은 스몰 브랜드, F&B, 스타트업이 가진 구조적 함정이다.
영상에서 지적하듯, 노동자들은 "힙한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바로 이 '자부심'이 노동 착취의 가장 정교한 명분이 된다. 이는 '열정페이'를 넘어선 '힙스터 착취(Hipster Exploitation)'다.
"우리는 쿨한 일을 하는 팀이잖아." (그러니 야근 수당은 잊어)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경험이야." (그러니 휴게시간은 사치야)
"브랜드의 성장이 곧 너의 성장이야." (그러니 퇴직금 쪼개기 계약은 감수해)
브랜드의 '힙함'이 노동법보다 우위에 서는 순간,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힙하지 못한' 불평분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하며 침묵하게 된다. LBM 사태는 이 구조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LBM의 비극은 '성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경험'을 파는 비즈니스일수록 그 경험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 경험'을 최우선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무거운 교훈을 남긴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쿨하고 힙한 경험'의 비용이 노동자의 '고통스럽고 반인권적인 경험'으로 지불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다. 시스템 없는 성장은 결국 무너지며, 노동자의 희생 위에 쌓은 브랜드 이미지는 한순간에 잿더미가 될 수 있음을 LBM은 증명했다.
진정한 '힙함'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시스템과 철학에 있다. '지속가능한 노동'이 보장되지 않는 '힙함'은 가짜다. LBM의 노동자들은 '경험'을 만들다 '경험' 그 자체를 착취당했다. 우리는 이 부조리한 '경험의 전가'를 멈춰 세울 사회적, 제도적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