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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티 없는 성장, 물류 마진에 갇힌 K-프랜차이즈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08 09: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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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지 않는 청구서를 찢어라: K-프랜차이즈가 나아갈 길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자, 여기 두 개의 청구서가 있습니다. 하나는 글로벌 피자 체인 파파존스가 가맹점주에게 보내는 청구서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장님, 이번 달 매출이 2,000만 원이군요. 약속대로 매출의 5%인 100만 원을 로열티로 보내주십시오. 사장님 가게가 잘 돼야 저희도 돈을 버니, 다음 달에도 신메뉴 홍보 열심히 돕겠습니다.” 


이 청구서는 명쾌하고, 어찌 보면 쌀쌀맞을 정도로 솔직합니다. 성공에 대한 대가를 명확히 요구하고, 그 성공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친숙한 어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가 보내는 청구서라고 상상해 봅시다. “사장님, 이번 달 장사는 어떠셨어요? 그건 그렇고, 본사가 지정한 ‘비법 파우더’와 ‘전용 식용유’ 대금 500만 원을 입금하셔야 합니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싸다고요? 원래 그런 겁니다. 그게 우리 사업 방식이고, 그 안에 본사의 노하우와 브랜드 가치가 다 포함된 것이지요.” 이 청구서는 로열티라는 단어 하나 없이 친근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어딘가 찜찜합니다. 보이지 않는 비용이 숨어있는 것 같고, ‘파트너’라기보다는 ‘필수 거래처’에 가까운 관계처럼 느껴집니다.


최근 서울 관악구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극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결국 이 두 개의 청구서, 즉 두 개의 다른 비즈니스 철학, 두 개의 다른 수익 모델과 마주하게 됩니다. 첫 번째 ‘투명한 청구서’는 ‘로열티’라는 이름의 글로벌 스탠더드입니다. 


두 번째 ‘불투명한 청구서’는 ‘물류 마진’ 혹은 ‘차액가맹금’이라 불리는 한국적 관행입니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을 뒤덮은 불신과 갈등의 늪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청구서’에서 시작됩니다.



‘공동운명체’와 ‘제로섬 게임’의 갈림길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브랜드 개발, 마케팅, 운영 노하우를 본사가 제공하고, 가맹점은 그 대가로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사의 이익은 가맹점의 성공과 비례해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바로 ‘로열티 모델’의 핵심 철학입니다. 


가맹점 매출이 늘면 본사 수익도 늘어납니다. 가맹점이 망하면 본사도 돈을 벌지 못합니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본사는 가맹점의 성공을 위해 필사적으로 뛸 수밖에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프랜차이즈 현실은 어떻습니까. ‘로열티 제로’를 내세우며 창업자를 유혹하지만, 실제로는 본사가 지정한 수많은 ‘필수품목’을 시중가보다 비싸게 사도록 강제합니다. 본사는 가맹점의 매출이 얼마인지보다, 이번 달에 ‘비법 파우더’를 몇 포대나 사 갔는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본사와 가맹점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본사의 이익(높은 물류 마진)은 곧 가맹점의 비용(높은 원가)이 됩니다. ‘제로섬 게임’의 판이 깔리는 순간입니다.


이 기형적 구조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왜곡된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본사는 가맹점의 질적 성공보다 양적 팽창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상권이 겹치든 말든, 기존 가맹점의 매출이 떨어지든 말든, 일단 가맹점 숫자만 늘리면 ‘파우더’와 ‘식용유’를 사줄 고객이 늘어나니 말입니다. 


사모펀드 같은 금융 자본이 이 구조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3~5년 안에 기업 가치를 뻥튀기해서 되팔아야 하는 그들에게, 가맹점의 숫자는 가장 확실하고 직관적인 ‘성장 지표’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신뢰가 사라진 자리를 불신과 감시가 채웁니다. 가맹점주는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이 파우더의 원가는 대체 얼마일까?’, ‘본사가 나에게 얼마나 남겨 먹는 걸까?’ 본사는 본사대로 가맹점주가 본사 몰래 다른 식자재를 쓰지 않는지 감시하려 듭니다. 


파트너십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는 관계만 남습니다. 관악구의 비극은 바로 이 불신과 갈등의 관계가 수리 비용이라는 도화선을 만나 폭발한 것입니다.



두꺼운 설명서와 얇은 홍보물


어쩌다 우리는 이런 기형적인 구조에 갇히게 되었을까요? 제도의 미비가 가장 큽니다. 미국에서는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기 전, 본사가 예비 창업자에게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정보공개서(FDD)’를 제공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상 비용, 소송 기록, 기존 가맹점주들의 평균 수익률과 연락처까지, 그야말로 회사의 ‘민낯’이 전부 담겨 있습니다. 창업자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최소 14일간 숙고할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받습니다.


반면 우리의 정보공개서는 어떻습니까.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 찬 얇은 홍보물에 가깝습니다. ‘실패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의사가 수술의 성공 가능성만 이야기하고, 부작용과 위험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사를 우리는 ‘사기꾼’이라 부릅니다.


이제 해법은 명확합니다. ‘보이지 않는 청구서’를 찢어버리고, 모두가 볼 수 있는 ‘투명한 청구서’를 쓰도록 판을 바꿔야 합니다.


첫째, ‘필수품목’이라는 성역에 메스를 대야 합니다. 브랜드의 통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품목이 아니라면, 가맹점주가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합니다. 만약 필수품목으로 지정한다면, 그 유통 마진이 얼마인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가격이 합당한지 가맹점주 단체가 협상할 수 있도록 교섭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둘째, 미국 수준의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성공 사례 뒤에 가려진 실패 사례의 데이터, 실제 평균 수익률, 그리고 숨겨진 비용까지 낱낱이 공개하도록 법제화해야 합니다. ‘사장님’이라는 꿈을 꾸는 이들이 더 이상 ‘깜깜이 창업’에 내몰리지 않도록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등을 켜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유독 국내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더 크게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내 퇴직한 아버지, 내 친구,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가족 같은 파트너십이었는데, 현실은 차가운 갑을관계였기에 그 배신감이 더 큰 것입니다.


이제 그릇된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청구서가 아닌, 투명한 청구서를 통해 서로의 기여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건전한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2의 비극을 막고, K-프랜차이즈가 진정한 산업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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