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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맛집’을 검색할 때 일어나는 일들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03 21: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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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시대의 ‘줄 서는 집’ 효과
  • 눈으로 먼저 먹는 시대의 도래
  • 우리는 음식이 아닌 ‘이야기’를 소비한다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저녁 시간이 다가옵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뇌는 이제 곧 닥쳐올 즐거운 식사를 상상하며 도파민을 살짝 분출할 준비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원시시대의 조상들처럼 창을 들고 사냥에 나서지는 않습니다. 대신 아주 우아하고 현대적인 사냥 도구,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그리고 ‘강남역 파스타 맛집’ 같은 키워드를 입력하죠. 이 행위는 일견 지극히 합리적인 정보 탐색 과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이 맛집을 고르는 그 짧은 순간, 여러분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은밀하고도 치열한 심리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 속 수많은 후보 식당 중 한 곳을 ‘낙점’하는 과정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식당 주인들이 아주 영리하게 설계해 놓은 심리적 그물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사냥감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전문 마케터가 아닐지 몰라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꿰뚫어 보는 아마추어 심리학자들임이 틀림없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줄 서는 집’ 효과


첫 번째 그물은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는 아주 튼튼한 녀석입니다. 자, 상상해 보시죠. 길을 걷다가 두 개의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한 곳은 텅 비어 있고, 다른 한 곳은 문밖까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십중팔구는 ‘저렇게 사람이 많은 걸 보니 분명 맛집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줄 서 있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길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증거의 힘입니다. 타인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의사결정이 옳다고 믿으려는 강력한 심리적 기제이죠.


SNS는 이 ‘줄 서는 효과’를 디지털 공간에 완벽하게 재현해냈습니다. 수많은 팔로워, ‘좋아요’가 쏟아지는 게시물, 별점 높은 리뷰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계정에 올린 방문 인증샷. 이것들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길게 늘어선 줄’입니다. 우리는 ‘A파스타’의 공식 계정이 올린 사진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A파스타 #인생맛집’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올린 사진을 볼 때 훨씬 강한 신뢰를 느낍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직접 돈을 내고 경험한 뒤 좋다고 증언하고 있잖아. 그러니 실패할 확률이 낮을 거야.’ 우리의 뇌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성적인 미식가가 되어 맛의 본질을 따지기 전에, 우리는 이미 다수의 선택에 안도하는 사회적 동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눈으로 먼저 먹는 시대의 도래


두 번째 그물은 더 원초적이고 강력합니다. 바로 시각적 욕구를 자극하는 ‘이미지의 폭격’입니다. ‘음식은 입으로 먹는 것이지 눈으로 먹는 것이냐’라고 항변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은 결국 우리의 뇌이고, 뇌는 글자보다 이미지에 압도적으로 빠르게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B스테이크’는 SNS에 “최상급 등심을 사용하여 육즙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스테이크”라고 글을 올립니다. 반면 ‘C스테이크’는 아무 말 없이, 잘 익은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자를 때 붉은 육즙이 단면에 배어 나오는 10초짜리 슬로우모션 영상을 올립니다. 당신의 침샘을 자극하고 당장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것은 어느 쪽입니까? 답은 명백합니다.


글자는 우리의 이성을 거쳐 해독되지만,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은 우리의 이성을 건너뛰고 곧장 본능과 욕망의 영역을 타격합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소스, 바삭하게 튀겨지는 소리(ASMR)까지 더해진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되죠. 이것은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음식을 먹었을 때 당신이 느끼게 될 쾌락’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미리 판매하는 행위입니다. 소상공인들은 이제 음식을 조리하는 요리사를 넘어, 고객의 뇌를 해킹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음식이 아닌 ‘이야기’를 소비한다


마지막 그물은 가장 은밀하지만 한번 걸리면 헤어 나오기 힘든 ‘스토리텔링(Storytelling)’입니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을 넘어, 그 음식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소비하고 싶어 합니다.


앞서 말한 ‘A파스타’가 “오늘 들어온 신선한 바질로 만든 페스토 파스타”라고만 알리는 대신, “대기업을 다니다 할머니의 손맛을 잊지 못해 귀향한 청년 사장이, 동네 농부 할아버지가 빗물만으로 키운 유기농 바질로 매일 아침 직접 페스토를 만듭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갑자기 그 파스타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청년의 꿈과 농부의 땀, 그리고 건강한 가치가 담긴 그릇으로 변모합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에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할 용의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소비’를 하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게 주인의 철학에 공감하고, 그 서사의 일부가 되는 경험은 음식의 맛을 뛰어넘는 만족감을 줍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가 가진 힘입니다. 우리는 배를 채우고, 동시에 마음까지 채우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니까요.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맛집을 선택하는 과정은 거대한 심리 게임의 장이 되었습니다. 식당 주인들은 사회적 증거로 우리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우리의 원초적 욕망을 깨우며, 따뜻한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에 닻을 내립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스마트폰을 들고 맛집을 검색하다가 어느 한 가게의 사진에 홀린 듯 마음을 빼앗기게 되거든, 한번 빙그레 웃어보십시오. 당신은 지금 단순히 굶주린 배를 채우려는 한 명의 고객이 아닙니다.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얻으려는 한 소상공인의 치열한 노력과 현대 사회의 욕망이 교차하는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의 주인공이니까요. 그 드라마를 즐기시고, 부디 맛있는 식사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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