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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진실은 투명할수록 무겁다 (오픈 키친의 심리학)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6-01-26 08: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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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인테리어 마감재는 대리석도, 금박도 아니다.
바로 '신뢰'다.
벽을 허물고 속살을 보여주는 순간, 의심은 확신으로 변하고 구경꾼은 팬(Fan)이 된다.

가게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강민석이 뿌린 가짜 뉴스, [서울 국밥, 식자재 재사용 의혹] 기사를 보고 몰려든 유튜버들과 삼류 인터넷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사장님! 남은 깍두기 다시 쓴다는 게 사실입니까?"


"육수에 프림 탄다는 제보가 있던데 해명해 주세요!"


서은 씨는 창백해진 얼굴로 카운터 뒤에 숨어 떨고 있었다. 예약 취소 전화가 빗발쳤고, 매장에 있던 손님들도 수군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사님... 어떡해요? 아니라고 해도 안 믿어줄 텐데..."


나는 담담하게 셔츠 소매를 걷어붙였다.


예상했던 그림이다. 강민석은 지금 우리가 당황해서 셔터를 내리고 숨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거봐, 찔리니까 숨잖아"라고 몰아갈 수 있으니까.


"서은 씨. 스크린 내리세요."


"네? 이 상황에요?"


"빨리요. 그리고 주방 CCTV 채널, 홀 메인 스크린으로 연결하세요."


나는 가게 한쪽 벽면에 설치된 100인치 빔프로젝터 스크린을 가리켰다. 평소엔 감성적인 영상이나 메뉴 사진을 띄워두던 곳이었다.


"지금부터 '라이브 쇼'를 시작합니다."





나는 가게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나는 기자들을 향해 정중하게 손짓했다.


"들어오시죠. 밖에서 추측하지 말고 안에서 확인하세요."


기자들이 우르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이 가장 먼저 꽂힌 곳은 벽면을 꽉 채운 대형 스크린이었다.


화면 속에는 현재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주방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었다.


네이비색 셰프 코트를 입은 이모님들이 마스크와 위생 장갑을 끼고 조리하는 모습. 육수를 끓이는 거대한 가마솥, 반짝거릴 정도로 닦인 스테인리스 조리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면.


직원이 손님이 남긴 뚝배기와 반찬을 수거해 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한 통에 붓고 폐기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저거... 지금 생중계인가요?"


한 기자가 물었다.


"네. 저희 서울 국밥은 주방에 4대의 4K 카메라를 설치해 24시간 녹화 중입니다. 언제든 돌려 보셔도 좋습니다."


나는 주방 쪽을 가리켰다.


우리는 리모델링 때 주방과 홀 사이의 벽을 허물고 투명한 통유리로 마감했다. 이른바 '글라스 월(Glass Wall) 오픈 키친'.


"보시다시피 벽이 없습니다. 숨길 게 없으니까요. 식자재 재사용? 프림? 제 눈앞에서 직접 육수 맛을 보시고, 쓰레기통을 뒤져보셔도 좋습니다."


나의 당당한 태도와 눈앞에 펼쳐진 압도적인 청결함에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셔터 소리가 잦아들었다. 의혹을 제기하러 왔다가, 오히려 위생적인 주방을 홍보해 주는 꼴이 되었다.


"그럼... 푸드코트 화재 안전 문제는요? 식물이 많아서 불나면 다 타죽는다는 기사가 떴던데."


강민석에게 사주를 받은 듯한 기자가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나는 웃으며 스크린 화면을 전환했다.


이번엔 푸드코트 '더 포레스트'의 시뮬레이션 영상이었다.


"기자님, 학교 다닐 때 과학 시간에 졸으셨나 봅니다."


"네?"


"살아있는 식물은 수분을 90% 이상 머금고 있습니다. 불이 붙어도 잘 타지 않아요. 오히려 천연 방화벽 역할을 하죠. 진짜 위험한 건..."


나는 리모컨 버튼을 눌러 다음 사진을 띄웠다.


강민석의 '더 하이 국밥' 인테리어였다.


"저기 보이는 싸구려 인조 가죽 소파, 화학 페인트로 칠한 벽, 그리고 가짜 플라스틱 조화들. 불이 나면 저것들이야말로 유독가스를 내뿜는 시한폭탄입니다. 저희 숲은 불이 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기 전에 식물들이 습기를 뿜어 온도를 낮춥니다. 소방서에서도 '우수 소방 대상물'로 지정했는데, 확인해 드릴까요?"


기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팩트로 때려 박으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위생 문제 말인데."


나는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제보가 틀린 건 아닙니다. 단지 '주어'가 틀렸을 뿐이죠."


나는 USB를 서은 씨에게 건넸다.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김 실장. 깍두기 많이 남은 건 물에 씻어서 다시 내라. 아깝잖아.]


-[사장님, 그러다 걸리면...]


-[안 걸려! 주방 안쪽에서 몰래 하면 누가 알아? 육수도 맹물 좀 섞고 다시다 더 넣어. 손님들 개돼지라 맛 몰라.]


강민석의 목소리였다. 어제 내가 잠입해서 녹음한, '더 하이 국밥' 주방 뒤편의 대화.


순간, 매장 안에 정적이 흘렀다.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님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저거 앞집 사장 목소리 아니야? 어제 내가 봤는데!"


나는 창밖을 가리켰다.


맞은편 '더 하이 국밥'은 지금 점심 장사가 한창이었다.


"여러분이 찾으시는 특종, 저희 집이 아니라 바로 저 앞집에 있는 것 같네요. 식자재 재사용 현장, 지금 덮치면 찍을 수 있을 겁니다."


"야! 가자!"


"대박이다, 저거!"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길 건너 '더 하이 국밥'으로 돌진했다.


유튜버들은 신나서 생중계를 하며 뛰어갔다.


"와! 여러분! 반전입니다! 재사용은 서울 국밥이 아니라 대기업 프랜차이즈 갑질 횡포였습니다! 지금 현장 급습합니다!"


잠시 후.


건너편 가게에서 고성방가와 비명이 들려왔다. 위생과 직원들이 들이닥치고, 강민석(혹은 바지 사장)이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는 모습이 우리 가게 스크린을 통해(유튜버 방송 화면으로) 중계되었다.


우리 가게에 남아 있던 손님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 사이다네, 사이다."


"사장님, 오해해서 미안해요! 여기 국밥 두 그릇 더 주세요!"


"역시 이 집은 믿고 먹는다니까. 주방이 저렇게 깨끗한데."


위기는 순식간에 최고의 홍보 기회가 되었다.


'투명한 주방'과 '당당한 태도'.


이것이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한 '공간의 진실'이었다.


서은 씨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이사님... 저 진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


"일어나요, 서은 씨. 이제부터 진짜 바빠질 테니까."


나는 스크린을 끄고 서은 씨를 일으켜 세웠다.


"투명하다는 건, 자신 있다는 뜻입니다. 손님은 귀신같이 알아요. 숨기는 자가 범인이라는걸."


그날, 서울 국밥 2호점의 매출은 역대 최고를 찍었다.


반면, 맞은편 '더 하이 국밥'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고 셔터를 내렸다. 흉물스럽게 걸려 있던 '50% 할인' 현수막이 바람에 찢겨 펄럭이고 있었다.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다.


특히, 중력이 잡힌 공간에서는 더더욱.




그날 밤.


모든 것이 정리되고, 텅 빈 가게에 홀로 남아 마감을 하고 있었다.


텅 빈 줄 알았던 문이 열렸다.


"영업 끝났습니..."


말을 맺기도 전에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아니, 낯익은 남자였다.


강민석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썼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비릿한 패배자의 냄새는 숨길 수 없었다.


"차이현."


그가 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재밌냐? 남의 가게 박살 내놓으니까?"


"자업자득이죠. 먼저 건드린 건 그쪽 아닙니까."


나는 행주를 내려놓고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정정하시죠. 가게를 박살 낸 건 제가 아닙니다. 대표님의 그 썩어빠진 마인드죠. 손님을 '개돼지'로 보는 사람이 만든 공간이 오래갈 리 있겠습니까?"


강민석이 마스크를 벗었다. 그의 눈에는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래... 네가 공간 심리니 뭐니 잘난 척하는데. 어디 언제까지 잘나가나 보자."


그는 품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


"이 건물, 그리고 드림시티 쇼핑몰 소유주가 누군지 알아? 내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KJ 그룹'이야."


그가 비열하게 웃었다.


"너, 임대 계약 연장 못 해. 그리고 푸드코트 관리권? 내일부로 박탈이야.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건물주'라는 진짜 중력 앞에서는 개미일 뿐이라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봉투.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서]였다.


아, 잊고 있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가 싸워야 할 최종 보스는 경쟁 업체가 아니라,


바로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사실을.


하지만 강민석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내가 설계한 '중력'은 건물 하나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미 이 도시 전체를 무대로 다음 판을 짜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연락처 목록의 가장 아래, [드림시티 왕 회장님]이라는 이름을 눌렀다.


지난번 푸드코트 오픈식 때 내게 명함을 줬던 진짜 주인.


"여보세요. 회장님. 차이현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아드님 교육 문제 때문에요."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다.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왜 맛집들은 주방을 보여줄까? (오픈 키친의 경제학)


과거의 식당들은 주방을 최대한 숨겼습니다. 더럽고 시끄러운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대의 F&B 트렌드는 '완전 개방'입니다.


1. 신뢰의 시각화 (Visual Trust)


사람은 눈으로 본 것만 믿습니다. "우리 위생 좋아요"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유리창 너머로 조리 과정을 한 번 보여주는 게 강력합니다. 오픈 키친은 고객의 의심 비용을 0으로 만듭니다.


2. 셰프의 무대화 (Kitchen as a Stage)


오픈 키친은 요리를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공연(Performance)'으로 만듭니다. 웍을 돌리고 불쇼를 하는 셰프의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인테리어이자 볼거리입니다. 이는 음식의 가치를 높이고,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듭니다.


3. 감시 효과로 인한 위생 상승


직원들도 사람인지라, 안 보이면 나태해집니다. 하지만 손님과 눈이 마주치는 구조라면? 딴짓을 하거나 비위생적인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구조가 행동을 강제하는 것이죠.


"벽을 허무세요. 주방이 깨끗하다면, 그것이 가장 강력한 마케팅 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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