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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옷이 날개? 아니, 옷은 ‘계급’이다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6-01-24 11:12:05
  • 수정 2026-01-24 11: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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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호텔 로비에서 슬리퍼를 끌며 침을 뱉는 사람은 없다.
공간의 격조가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주인(직원)이 품위를 잃는 순간, 손님은 그곳을 다시는 존중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파인다이닝 국밥 (The Heritage)]


서울 국밥 2호점의 인테리어는 완벽했다.


기존의 국밥집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과감하게 '모던 한옥' 컨셉을 차용했다. 바닥은 묵직한 흑단 마루, 벽면은 거친 질감의 회색 현무암 타일. 테이블 위에는 방짜 유기 수저와 도자기 그릇이 세팅되어 있었다.


조명은 3000K 전구색으로 낮게 깔렸고, 은은한 가야금 선율이 BGM으로 흐르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1인당 10만 원짜리 한정식집이었다.


하지만...


"야! 3번 테이블 순대국 하나! 깍두기 좀 더 줘!"


"아이고, 손님! 신발은 그냥 신고 들어오라니까요!"


와장창-!


스테인리스 쟁반이 바닥에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공간은 '청담동'인데,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시장통'이었다.


서은 씨가 고용한 이모님들. 음식 솜씨는 일품이었지만, 서비스 마인드는 30년 전 장터 국밥집에 머물러 있었다. 형광 주황색 앞치마,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 뒤꿈치를 구겨 신은 슬리퍼. 그리고 고막을 때리는 고함 소리.


이건 마치 최고급 세단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꼴이었다.


불협화음.


공간의 중력이 사람 때문에 깨지고 있었다.


"이사님... 이모님들이 평생 시장에서 장사하시던 분들이라... 고치기가 쉽지 않네요."


서은 씨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님들의 표정도 묘했다.


분위기는 고급스러워서 들어왔는데, 직원이 "오빠, 뭐 줄까?" 하고 반말 섞인 응대를 하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은 씨. 국밥 가격을 7천 원에서 1만 2천 원으로 올렸죠?"


"네. 좋은 재료 쓰고 그릇도 바꿨으니까요."


"손님이 그 5천 원의 차이를 어디서 납득할까요? 맛? 그릇? 아닙니다."


나는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치고 있는 이모님들을 가리켰다.


"대접받는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7천 원짜리 서비스를 받으면서 1만 2천 원을 내라고 하니, 손님 뇌에서는 '비싸다'는 인식이 박히는 겁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김 실장님. 저번에 주문한 거, 지금 바로 퀵으로 보내주세요."





한 시간 뒤.


커다란 박스들이 도착했다.


나는 가게 문을 잠시 닫고(브레이크 타임), 직원들을 모두 홀에 모았다.


이모님들은 "바빠 죽겠는데 무슨 회의냐"며 입이 댓 발 나와 있었다.


"다들 옷 갈아입으세요."


내가 박스를 뜯어 옷을 나눠주었다.


형광 주황색 앞치마가 아니었다.


깃이 빳빳하게 선 짙은 네이비색 셰프 코트(Chef Coat), 검은색 슬랙스, 그리고 허리만 감싸는 단정한 롱 에이프런이었다. 슬리퍼 대신 신을 깔끔한 단화까지.


"어머, 이게 뭐야? 무슨 호텔 주방장 옷이여?"


"불편하게 이런 걸 어떻게 입고 일해? 국물 튀면 어쩌려고!"


반발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바였다.


"이모님들. 아니, 이제부터 '셰프님'들이시죠."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국밥을 파는 게 아닙니다. '한국의 소울 푸드'를 파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 음식을 싸구려 취급하면, 손님도 우리를 싸구려 취급합니다."


나는 거울을 가리켰다.


"한 번만 입어보세요. 거울 속에 누가 있는지."


투덜거리던 최고참 왕 이모님이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늘어난 티셔츠에 몸배바지를 입었을 때는 영락없는 '욕쟁이 할머니' 같았는데, 네이비색 셰프 코트를 입고 허리끈을 질끈 동여매자...


"어머..."


서은 씨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울 앞에 선 왕 이모님의 등 뒤로 묘한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전문가(Expert). 장인(Master).


옷이 바뀌자 구부정했던 허리가 펴졌고, 팔짱을 낀 자세에서 위엄이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제복 효과(Enclothed Cognition)'다. 사람은 입은 옷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


"나... 좀 멋있냐?"


왕 이모님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만졌다. 다른 직원들도 쭈뼛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시끄러웠던 시장통 분위기가 순식간에 '파인 다이닝 키친'으로 변모했다.


"자, 이제 룰을 바꿉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크게 세 가지를 적었다.


  1. NO Shouting: 주문은 소리치지 말고 포스기로 조용히 전달한다.


  2. Eye Contact: 서빙할 때 그릇을 툭 던지지 말고, 손님 눈을 보고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한다.


  3. Slow Walking: 매장에서 뛰지 않는다. 우아하게 걷는다.


"불편할 겁니다. 답답할 겁니다. 하지만 딱 일주일만 해보세요. 손님들이 여러분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저녁 장사가 시작되었다.


2호점의 문이 열리자마자 손님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근처 대기업의 임원이나, 중요한 접대 자리를 찾는 손님들이었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우니 타겟층이 바뀐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왕 이모님... 아니, 왕 셰프님이 중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예전 같으면 "몇 명이야?"라고 소리쳤겠지만, 지금은 정중하게 손을 뻗어 자리를 안내했다.


손님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들은 셰프 코트를 입은 직원들을 보자마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반말을 찍찍 내뱉던 사람들도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요~ 소주 한 병 가져와!" 가 아니라,


"저기요, 여기 소주 한 병 부탁합니다."로 바뀌었다.


공간의 무게와 직원의 품격이 맞아떨어지자, 손님들도 그 '격식의 중력'에 동화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Mirror Neuron)' 효과다. 상대방이 정중하면 나도 정중해진다.


그때, 까다로워 보이는 50대 여성이 들어왔다. 명품 가방을 든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먼지 하나라도 나오면 난리를 칠 기세였다.


전생의 나였다면 가장 피곤해했을 유형의 손님.


직원이 국밥을 서빙했다. 방짜 유기그릇에 담긴 정갈한 국밥.


직원은 그릇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눈을 맞추고 미소 지었다.


"뜨거우니 조심하십시오. 육수는 24시간 고아낸 것입니다."


그녀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더니, 직원을 불러 세웠다.


"여기요."


"네, 손님. 불편하신 점 있으십니까?"


"아니... 국물이 정말 좋네. 그리고..."


그녀는 직원의 네이비색 유니폼과 명찰을 빤히 쳐다보았다.


"직원분들이 참 단정해서 좋네요. 요즘 식당들은 정신 사나워서 밥이 안 넘어가는데, 여기는 대접받는 기분이야."


그녀는 지갑에서 5만 원권 한 장을 꺼내 팁으로 건넸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상황 종료.


주방에서 지켜보던 왕 셰프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생 "아줌마", "이모" 소리만 듣다가 처음으로 "선생님", "셰프님"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녀들의 눈빛에 자부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매출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객단가가 5천 원이나 올랐지만,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 가격에 이런 분위기면 혜자네"라는 후기가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은 씨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이사님... 옷 하나 바꿔 입었을 뿐인데, 가게 공기가 달라졌어요."


"옷이 아니라 마음을 갈아입은 거죠."


나는 흐뭇하게 매장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조명, 묵직한 가구, 그리고 품격 있는 사람들.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공간은 이제 거대한 자석이 되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제 강민석도 긴장 좀 타겠는데.'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


가게 밖, 어둠 속에서 누군가 우리 가게 사진을 몰래 찍고 있는 게 보였다. 셔터 소리 없이, 은밀하게.


강민석의 하수인이겠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왜 스타벅스 직원은 '닉네임'을 부를까? (접객의 심리학)


서비스는 '친절함'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지 치밀하게 계산해야 합니다.



1. 제복 효과 (Enclothed Cognition)


직원의 복장은 매장의 인테리어 중 가장 움직임이 많은 요소입니다. 직원이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고객은 무의식적으로 "이곳은 위생적이지 않다"고 느낍니다. 반면, 각 잡힌 유니폼과 앞치마는 전문성과 신뢰를 줍니다. 유니폼은 직원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갑옷이기도 합니다.



2. 깨진 유리창 이론 (Broken Windows Theory)


사소한 무질서가 거대한 범죄를 부른다는 이론입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의 태도가 산만하면 고객도 산만해집니다. 직원이 그릇을 던지듯 놓으면, 고객도 테이블을 더럽게 씁니다. 반대로 직원이 정중하면, 진상 고객도 줄어듭니다.



3. 호칭의 힘


"저기요", "이모", "아가씨"라는 호칭은 직원을 하대하게 만듭니다. 직원의 가슴에 '매니저', '프로', '셰프' 같은 직함이 적힌 명찰을 달아주세요. 고객은 그 명찰을 보는 순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직원을 존중받게 만드는 것이, 사장님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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