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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코끝에서 결정되는 매출 (보이지 않는 인테리어)
  • 진익준
  • 등록 2026-01-22 20: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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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속일 수 있어도 코는 속일 수 없다.
시각 정보가 뇌에 도달하는 데는 0.2초가 걸리지만, 후각은 0.1초 만에 감정과 기억의 뇌(변연계)를 직격한다.
악취가 나는 궁전보다, 빵 굽는 냄새가 나는 오두막이 더 머물고 싶은 법이다.


오픈 1주일 차. ‘더 포레스트(The Forest)’ 푸드코트는 순항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강민석이 던진 경고, "식물 관리하기 힘들걸?"이라는 말이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음을.


오후 3시. 현장을 점검하러 갔을 때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운 숲이었다. 조명도 따뜻했고, 식물도 푸르렀다.


하지만 공기가 무거웠다.


"킁킁... 이사님, 이게 무슨 냄새죠?"


함께 온 서은 씨가 코를 쥐었다.


음식 냄새, 사람들의 땀 냄새, 그리고 습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뒤섞여 묘하게 비릿하고 꿉꿉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장마철에 덜 마른 빨래를 널어놓은 듯한 불쾌감.


내 눈에 보이는 공간의 중력이 '회색 진흙'처럼 질척거리고 있었다.


손님들의 표정도 미묘했다. 들어왔다가 "어우, 냄새가 왜 이래?" 하며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체류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시설팀장님! 공조기(환기 시스템) 확인하셨습니까?"


내가 관리실로 달려가 따져 물었다. 시설팀장은 눈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아, 거참. 기계가 좀 노후돼서 고장이 잦네요. 수리 부품 오려면 며칠 걸립니다."


"고장이요? 어제까지 멀쩡하던 게 갑자기요?"


"기계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젊은 양반이 빡빡하시네."


그의 주머니에 꽂힌 볼펜. 'The High' 로고가 박힌 고급 볼펜이었다.


강민석이다. 그가 시설팀을 매수해서 환기 시스템을 고의로 약하게 틀어놓은 게 분명했다.


식물이 많은 공간에서 환기가 안 되면 습도가 치솟는다. 거기에 음식 냄새가 갇히면 순식간에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되어버린다.


"이대로 며칠 가면 식물들 뿌리 썩고 벌레 꼬입니다. 그걸 노린 거군요."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눈(Visual)을 이기지 못하니 코(Scent)를 공격한다? 치졸하지만 효과적인 수법이다.


인간은 시각 정보보다 후각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아무리 예쁜 숲이라도 썩은 내가 나면 쓰레기장일 뿐이다.


"이사님, 어떡해요? 당장 환풍기라도 사 올까요?"


서은 씨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뇨. 환풍기로는 이 넓은 공간을 감당 못 합니다."


나는 눈을 감고 공기의 흐름을 읽었다.


위기는 기회다. 강민석이 공기를 망쳐놨다면, 나는 그 공기를 '조각'해서 되갚아주면 된다.


"서은 씨. 지금 당장 백화점 1층으로 가서 제가 적어주는 브랜드의 디퓨저와 캔들을 싹 쓸어오세요. 그리고 제빵용 오븐 하나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보고요."


"네? 오븐은 왜요?"


"냄새를 냄새로 덮는 건 하수입니다. 우리는 냄새를 '설계'할 겁니다."





한 시간 뒤.


강민석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푸드코트에 나타났다.


그는 코를 막는 시늉을 하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어이구, 냄새야. 이게 숲이야, 늪이야? 차이현 씨, 내가 말했지? 관리가 생명이라고."


그는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들리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이런 퀴퀴한 곳에서 밥을 어떻게 먹어? 위생 상태가 엉망이구만."


하지만 이상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손님들은 코를 막기는커녕,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어? 이거 무슨 냄새지? 되게 좋다."


"숲 냄새 같은데? 편백나무 향인가?"


"아니야, 저쪽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나. 와, 배고파."


강민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악취는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머리가 맑아지는 '피톤치드(Phytoncide)' 향과, 침샘을 자극하는 고소한 '버터 향'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공조기는 꺼놨을 텐데!"


내가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공기가 좀 달라졌죠?"


나는 손에 든 작은 기계를 흔들어 보였다. 상업용 발향기(Scent Diffuser)였다.


"공조기가 고장 났다길래, 제가 '공기의 구획(Zoning)'을 좀 나눴습니다."


나는 공간을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1. 휴식 존 (The Forest):


  2. 이곳에는 '시더우드(Cedarwood)'와 '유칼립투스' 향을 배치했다. 젖은 흙냄새와 섞이면 마치 비 온 뒤의 숲속에 있는 듯한 '페트리코(Petrichor)' 효과를 낸다. 꿉꿉한 습기를 오히려 '싱그러운 물안개' 느낌으로 치환해버린 것이다.


  3. 식사 존 (The Kitchen):


  4. 입구와 베이커리 근처에는 인위적인 방향제 대신, 실제 오븐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바닐라와 커피 향을 태웠다. 음식 냄새(잡내)를 가장 효과적으로 잡는 건, 더 강력하고 맛있는 냄새다.


"이걸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고 하죠. 특정한 향기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상."


나는 강민석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사람들은 이제 이곳의 냄새를 맡으면, 짜증 나는 푸드코트가 아니라 '고급 리조트의 로비'나 '어릴 적 소풍 갔던 숲'을 떠올릴 겁니다. 대표님이 환기를 막아준 덕분에 향기가 밖으로 안 빠져나가고 아주 진하게 배었네요. 감사합니다."


"너... 너 이 자식..."


강민석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 지나가던 쇼핑몰 임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오, 차이현 씨! 여기 향기 정말 좋네요. 무슨 향입니까? 우리 쇼핑몰 전체에 이 향을 깔고 싶은데."


"자체 블렌딩한 시그니처 향입니다. 이름은 'Midnight Forest'라고 지었습니다."


임원은 감탄하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대단해. 역시 차이현 씨야. 강 대표, 보고 좀 배워요. 인테리어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니까."


강민석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의 등 뒤로 싱그러운 숲의 향기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사님! 진짜 대박이에요. 향기 나니까 사람들이 더 오래 앉아 있어요!"


서은 씨가 오븐에서 갓 구운 쿠키를 들고 달려왔다.


"후각은 감정의 뇌인 변연계와 직결되니까요. 좋은 향을 맡으면 뇌는 무장해제됩니다. 경계심을 풀고 지갑을 열 준비를 하는 거죠."


나는 쿠키 하나를 집어 먹었다.


달콤한 버터 향, 쌉싸름한 커피 향, 그리고 시원한 나무 향.


보이지 않는 중력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제 시각, 청각, 후각까지 완성됐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진정한 중력은 '사람'이 완성하는 법.


"서은 씨. 이제 하드웨어는 끝났습니다."


"네? 그럼 뭐가 남았어요?"


"소프트웨어요. 아무리 좋은 공간도 '접객(Service)'의 온도가 안 맞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나는 다음 타깃인 국밥집 2호점, 아니 '파인다이닝 국밥'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그곳에서는 공간 디자인을 넘어, '행동 심리학'을 실험할 것이다.


"가시죠. 이제 직원들 유니폼부터 싹 다 갈아엎으러."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왜 백화점 1층에는 화장품과 향수가 있을까? (향기 마케팅의 비밀)


고객이 매장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직원의 인사가 아니라 '향기'입니다. 이를 '향기 마케팅(Scent Marketing)' 혹은 '후각 브랜딩'이라고 합니다.


1. 프루스트 효과 (Proust Effect)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듯, 후각은 기억을 불러내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입니다. 좋은 향기가 나는 매장은 고객의 뇌리에 "기분 좋은 곳"으로 깊이 각인되어 재방문율을 높입니다.


2. 업종별 추천 향기 (Scent Pairing)


  • 호텔/리조트: 유칼립투스, 대나무, 화이트 티 (청결함과 휴식)


  • 의류 매장: 코튼, 린넨, 시트러스 (새 옷의 산뜻함)


  • 카페/베이커리: 커피, 바닐라, 시나몬 (식욕 자극 및 따뜻함)


  • 서점/도서관: 편백나무, 샌달우드 (집중력과 안정)


3. 절대 금물: 저렴한 방향제


마트에서 파는 강한 라벤더 향이나 레몬 향 방향제는 절대 쓰지 마세요. 오히려 "화장실 냄새를 덮으려나?" 하는 의심을 줍니다.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향(우디 계열, 허브 계열)을 사용하거나, 차라리 환기를 자주 시켜 무취(無臭)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낫습니다.


"당신의 가게에서는 무슨 냄새가 납니까? 그 냄새가 곧 당신 브랜드의 첫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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