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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태양을 훔친 남자 (색온도의 비밀)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6-01-22 07: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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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인테리어인데, 어떤 집은 모델하우스처럼 차갑고 어떤 집은 호텔처럼 아늑하다.
비밀은 ‘전구’에 있다.
당신이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든 ‘주광색(하얀빛)’ 전구가 당신의 집을 사무실로 만들고 있다.

[최종 낙찰: 차이현 (뉴-빌드)]


스크린에 내 이름이 뜨는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갈라졌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였다.


강민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스크린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저런 촌스러운 숲타령이 먹혔다고?"


그는 내 옆을 지나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운이 좋았군. 하지만 시공은 디자인이랑 달라. 네가 그럴싸하게 그린 그림이 현실에서도 통할 것 같아?"


"걱정 마십쇼. 그림보다 더 죽여주게 나올 테니까."


나는 여유롭게 웃어넘겼다. 강민석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에서 [패배감]과 [독기]가 검붉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이사님! 우리가 이겼어요! 세상에!"


서은 씨가 내 팔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나는 그녀의 들뜬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좋아하긴 이릅니다.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예요. 현장은 사무실보다 훨씬 더 거칠거든요."





한 달 후, 드림시티 푸드코트 리뉴얼 현장.


공사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바닥에는 흙을 밟는 느낌을 주는 콩자갈이 깔렸고, 곳곳에 대형 벤자민 나무와 야자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반장님! 이거 조명이 왜 이럽니까?"


내가 사다리 위에 있는 전기 반장님을 향해 소리쳤다.


천장에 달린 펜던트 조명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문제였다.


시퍼렇고, 차갑고, 날카로운 하얀색 빛.


반장님이 귀찮다는 듯 장갑을 벗으며 내려왔다.


"아, 왜 또 그래요? 도면대로 LED 15와트짜리 박았잖아요. 밝고 좋구만."


"제가 도면에 분명히 '전구색(3000K)'으로 스펙 박아놨지 않습니까. 이건 '주광색(6000K)'이잖아요!"


반장님이 혀를 찼다.


"아니, 식당이 밥 먹는 데지 잠자는 데요? 누르스름한 불 켜면 침침해서 밥알이 보이겠어? 그리고 자재상이 이게 더 싸고 밝다고 해서 좋은 걸로 가져온 건데, 거참 까탈스럽네."


전형적인 현장의 오해였다.


많은 사람이 '밝은 것 = 좋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가정집이든 식당이든 대낮처럼 하얀 형광등색(주광색)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건 사무실이나 독서실, 혹은 편의점에서나 쓰는 색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공간은 '숲'이다. 숲에 차가운 형광등 불빛을 비추면 어떻게 될까?


"서은 씨, 저기 전원 좀 올려보세요."


탁-


스위치가 올라가자 천장의 조명들이 일제히 켜졌다.


그 순간, 아늑해야 할 숲이 '공포 영화 세트장'으로 변했다.


차가운 하얀 빛을 받은 초록색 잎사귀들은 플라스틱 조화처럼 가짜 티가 팍팍 났다. 바닥의 따뜻한 콩자갈은 시멘트 바닥처럼 차갑게 보였고, 나무 그림자는 날카롭게 져서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 이사님. 뭔가... 으스스한데요? 귀신 나올 것 같아요."


서은 씨가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반장님도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훤하고 좋기만 한데..."


"반장님.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 겁니다. 이 파란 불빛 아래서 제육볶음을 보면 무슨 색으로 보일까요? 시퍼렇게 죽은 고기처럼 보입니다. 식욕이 뚝 떨어지죠."


나는 주머니에서 미리 챙겨온 전구 하나를 꺼냈다.


3000K 전구색(Warm White). 노을빛을 닮은 따뜻한 주황색 전구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중앙에 있는 메인 조명의 전구를 갈아 끼웠다.


"다시 켜보세요."


딸깍-


단 하나의 전구만 바뀌었을 뿐인데, 공기의 온도가 달라졌다.


주황빛이 닿은 나뭇잎은 생기를 머금은 듯 진한 녹색으로 빛났고, 바닥의 자갈은 따뜻한 황토색으로 변했다. 차갑고 날카롭던 그림자는 부드럽게 뭉개져 아늑함을 더했다.


마치 숲속에 캠프파이어를 피워놓은 듯한, 원초적인 따뜻함.


"와..."


서은 씨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전기 반장님도 눈을 크게 떴다.


"허, 거참 신기하네. 전구 하나 바꿨다고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나?"


"이게 '색온도(Color Temperature)'의 마법입니다. 반장님, 6000K는 '이성'을 깨우고, 3000K는 '감성'을 깨웁니다. 우리는 지금 손님들의 감성을 건드려야 해요. 여기서 쉬고 싶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나는 반장님의 손을 잡았다.


"부탁드립니다. 전부 다 3000K로 교체해 주세요. 자재비 차액은 제가 낼 테니까."


"아이, 알았어! 까짓거 바꾸면 될 거 아냐. 젊은 양반이 고집 한번 세네."


반장님은 투덜거렸지만, 얼굴에는 묘한 인정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렇게 푸드코트의 모든 조명이 교체되었다.


차가운 냉동창고 같던 공간에 비로소 따뜻한 피가 돌기 시작했다.






[D-Day: 드림시티 푸드코트 '더 포레스트' 오픈]


오픈 첫날. 나는 일부러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2시에 현장을 찾았다.


오픈빨이 빠지고, 진짜 공간의 힘이 드러나는 시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만석이었다.


아니, 단순한 만석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밥만 먹고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2시. 하지만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화단 경계석에 걸터앉아 수다를 떠는 학생들, 유모차를 끌고 와 나무 그늘 아래서 아이를 재우는 엄마들.


그곳은 더 이상 푸드코트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실내 공원'이었다.


식물들이 만들어준 자연스러운 파티션 덕분에 소음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3000K의 따뜻한 조명은 사람들의 표정을 편안하게 풀어주었다.


[안락함], [휴식], [머무름].


공간 곳곳에 황금색 닻들이 수없이 박혀 있었다. 강력한 중력이 사람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거... 자네가 한 건가?"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드림시티 쇼핑몰의 회장님이 수행비서들과 함께 서 있었다.


"네, 차이현입니다."


"놀랍구만. 죽어있던 지하상가가 이렇게 살아나다니. 매출 보고를 받았는데, 오픈 첫날부터 푸드코트 매출이 200% 뛰었어. 게다가 체류 시간이 늘어나니 위층 쇼핑몰 매출까지 덩달아 올랐더군."


회장님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석 대표가 아니라 자네를 선택한 게 내 인생 최고의 투자였어."


그때,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강민석이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목례했다.


"구경 오셨습니까? 대표님."


"......"


강민석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의 무력감.


"제법이군. 조명 톤을 낮추고 식물로 소음을 잡았어. 인정하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이건 그저 '운'이야. 쇼핑몰 손님들이 싼 티 나는 감성을 좋아했을 뿐이라고."


그는 여전히 자신의 패배를 디자인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었다.


"대표님.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뭐?"


"대표님은 공간에다 자꾸 '돈'을 바르려고 합니다. 저는 공간에 '시간'을 심습니다.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시간을요. 그 차이입니다."


강민석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시간? 그래, 어디 그 시간이 언제까지 가나 보자. 네가 만든 이 숲, 유지 관리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식물들 시들고 벌레 꼬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거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남기고 돌아섰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그냥 물러날 위인이 아니라는걸.


아마도 그는 내 '숲'을 망가뜨리기 위해, 식물 납품 업체를 건드리거나 관리 업체를 매수할지도 모른다.


'덤벼 봐. 이번엔 내가 먼저 선수를 칠 테니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서은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서은 씨, 국밥집 2호점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3호점 갑시다. 이번엔 '소리'와 '향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나의 중력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우리 집 조명, 혹시 '창백한 얼굴'로 만들고 있나요? (조명 색온도 가이드)


조명은 인테리어의 화룡점정입니다. 아무리 비싼 가구를 놔도 조명 색이 틀리면 분위기를 망칩니다. 핵심은 '켈빈(K)' 값입니다.


1. 주광색 (Daylight, 6000K~6500K)


  • 색깔: 푸른빛이 도는 하얀색. 대낮의 태양빛.

  • 느낌: 차가움, 긴장감, 각성 효과.

  • 추천 장소: 사무실, 학교, 병원, 정밀 작업실.

  • 비추천: 침실, 식탁, 거실. (음식이 맛없어 보이고, 휴식을 방해함)


2. 주백색 (Cool White, 4000K~5000K)


  • 색깔: 아이보리색. 하얗지만 따뜻한 느낌.

  • 느낌: 자연스러움, 깔끔함.

  • 추천 장소: 거실 메인 조명, 욕실, 주방 조리대, 화장대. (색 왜곡이 적어 화장할 때 좋음)


3. 전구색 (Warm White, 2700K~3000K)


  • 색깔: 오렌지색. 노을빛.

  • 느낌: 따뜻함, 아늑함, 감성적.

  • 추천 장소: 식탁(음식이 가장 맛있어 보임), 침실 무드등, 카페, 호텔.


[사장님을 위한 Tip]


가게가 왠지 모르게 춥고 썰렁해 보인다면, 천장 조명을 확인하세요. 하얀색(주광색)이라면 당장 노란색(전구색)으로 바꾸세요. 고객의 체류 시간이 늘어나고, 셀카를 찍는 횟수가 급증할 것입니다. 빛은 곧 공간의 온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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