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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소설] 망한 가게에는 중력이 없다: 2화. 예쁜 쓰레기들의 무덤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2-23 17: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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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에고(Ego)가 강해질수록 클라이언트의 통장은 가벼워진다.

"이게 요즘 트렌드예요", "예술이잖아요"라는 말에 속지 마라.

불편한 의자는 예술이 아니라 고문 도구일 뿐이다.


< 소설로 배우는 식당경영: 망한 가게에는 중력이 없다 >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가게를 나왔을 때,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직장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고, 학생들은 편의점 앞을 서성였다. 7년 전, 2017년의 서울.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얄미울 정도로 눈부셨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가 빈손으로 꺼냈다. 맞다, 끊었지. 아니, 전생에서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강제로 끊어야 했다.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줄담배. 32살의 차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삼박자였다.


‘이번 생은 좀 건강하게 살자.’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국밥집에서 나오기 전, 서은 씨에게 내 명함을 건네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테리어, 새로 하실 생각 마세요. 돈만 날립니다. 그냥 제가 시키는 대로 가구 배치만 좀 바꾸죠. 비용은... 나중에 국밥 100그릇으로 퉁칩시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눈치였지만, 당장 손님이 들어닥치는 걸 눈으로 봤으니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했을 거다.


나는 뚜벅뚜벅 회사로 향했다.


‘뉴-빌드’. 내가 막내로 일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소.


전생의 나는 이곳에서 밤낮없이 도면을 치고, 현장을 뛰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3년 뒤 독립해 내 이름으로 된 스튜디오를 차렸다.


성공 가도였다. 청담동, 한남동의 고급 라운지바와 갤러리 카페들이 내 손에서 탄생했다.


사람들은 내 디자인에 열광했다. 차가운 금속 소재, 비정형적인 곡선, 압도적인 층고. 사진을 찍으면 기가 막히게 나오는,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내 공간은 ‘사람’을 거부했다.


"차 실장님, 의자가 너무 딱딱해서 손님들이 불평하는데요..."


"그 의자 라인이 생명이에요. 방석 같은 거 놓지 마세요. 디자인 죽으니까."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메뉴판이 안 보인답니다."


"원래 어두워야 힙한 겁니다. 손전등 켜고 보라고 하세요."


나는 오만했다. 고객의 불편함은 무지(無知) 탓이라 여겼고, 내 디자인 철학을 이해 못 하는 대중을 비웃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오픈빨로 반짝하던 가게들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줄줄이 폐업했다. 사장님들은 빚더미에 앉았고, 나에게 소송을 걸기도 했다. 업계에서 ‘차이현이 손대면 망한다’는 소문이 도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망했다. 명예도, 돈도, 건강도 잃고 쓸쓸히 병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신은 왜 나를 다시 살려냈을까.’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25살의 앳된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아마도 숙제를 하라는 뜻이겠지. 내가 만든 ‘예쁜 쓰레기’들 때문에 눈물 흘렸던 사장님들에게 빚을 갚으라는.


"차이현! 너 어디 갔다 이제 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점심 먹고 왔습니다."


"지금 밥이 넘어가? 오후 미팅 자료 준비 다 했어? 김 사장님네 카페 도면 수정했냐고!"


김 사장님. 이번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였다. 은퇴 자금을 털어 동네에 작은 브런치 카페를 차리려는 50대 남성.


팀장님은 그 카페에 최신 유행하는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을 입히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철제 모듈 가구, 원색의 플라스틱 의자, 차가운 유리 테이블...


‘그 동네 상권은 4050 주부들이 메인인데, 그런 차가운 인테리어가 먹힐 리 없지.’


전생의 나라면 팀장님 비위를 맞추며 더 힙하고, 더 쨍한 디자인을 뽑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팀장님. 도면 수정했습니다."


나는 출력해 온 투시도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팀장님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촌스러워?"


"촌스러운 게 아니라 따뜻한 겁니다."


"뭐?"


"바닥재 우드로 바꿨고요. 의자는 패브릭 소파로 넣었습니다. 조명도 레일 조명 대신 펜던트로 내렸고요."


"야, 차이현. 너 미쳤어? 요즘 누가 이렇게 해? 이건 그냥 다방이잖아!"


팀장님이 도면을 집어 던졌다. 종이가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무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동료들이 숨을 죽이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태연하게 바닥에 떨어진 도면을 주웠다. 내 눈에는 보였다. 팀장님이 고집하는 그 ‘힙한’ 도면 위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폐업 확률 98%]라는 붉은 경고등과 함께.


"팀장님. 김 사장님 가게, 15평입니다. 좁아요."


"그러니까! 좁으니까 더 세련되게 꾸며야 사람들이 찾아올 거 아냐!"


"좁은데 쇠랑 유리로 도배하면 소리가 울립니다. 주부들이 와서 수다 떨 공간인데, 자기 목소리가 웅웅거리면 누가 오래 앉아 있겠습니까? 10분 만에 머리 아파서 나갑니다."


"......"


"그리고 저 플라스틱 의자, 엉덩이 차가워서 겨울엔 아무도 안 앉아요. 회전율 높이는 게 목표면 성공이겠지만, 김 사장님은 '동네 사랑방'을 원하신다면서요. 그럼 엉덩이가 따뜻해야죠."


내 말에 팀장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감히 막내 주제에 팀장의 디자인 감각을 지적하다니.


"너... 너 지금 나 가르치냐?"


"아뇨. 사장님 돈 지켜드리는 겁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이대로 공사하면, 김 사장님 3개월 안에 망해요. 장담합니다."


"너 나가."


"네?"


"나가라고! 시말서 써오기 전까진 책상 앞에 앉을 생각도 하지 마!"


쫓겨났다. 뭐, 예상했던 바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어차피 이 회사는 내 그릇을 담기엔 너무 작았으니까.


거리를 걷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저기, 차이현 씨 되시나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아까 그 국밥집 사장, 정서은 씨였다.


"네, 접니다."


-저... 바쁘신가요? 지금 가게에 손님이 꽉 차서요... 웨이팅까지 생겼는데...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가 모자라요. 그리고 손님들이 자꾸... 밥을 다 먹었는데도 안 나가요. 너무 편해서 잠이 올 것 같대요. 이거 어떡하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중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너무 편안해서 엉덩이가 무거워진 손님들. 회전율이 떨어지는 행복한 비명.


"지금 갑니다. 2라운드 시작해야죠."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회사에서 잘린 김에 잘됐다.


이제부터 나는 가짜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진짜를 살리는 '공간의 의사'가 될 테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왜 카페 의자는 점점 불편해질까?


요즘 카페나 핫플레이스에 가면 등받이가 없거나, 테이블이 무릎보다 낮은 기이한 가구들을 자주 봅니다. 사장님들이 몰라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철저히 계산된 ‘불편함의 경제학’입니다.


1. 쫓아내지 않고 내보내는 기술


임대료가 비싼 상권일수록 회전율이 생명입니다. 손님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3시간씩 죽치고 앉아 있으면 가게는 망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30분 이상 앉아 있기 힘든 딱딱한 의자와 낮은 테이블을 둡니다. "빨리 마시고 나가주세요"라는 무언의 압박이죠.


2. 카공족(Cafe Study) 방어기제


콘센트를 없애고, 와이파이를 느리게 하고, 조명을 어둡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공부나 노트북 작업을 하기엔 부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순수하게 '대화'와 '취식'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3. 하지만 명심하라


이 전략은 스타벅스처럼 브랜드 파워가 있거나, 웨이팅이 끊이지 않는 초대박 맛집에서나 통하는 배부른 전략입니다. 동네 상권이나 단골 장사가 필요한 가게에서 섣불리 흉내 냈다가는?


손님은 "불편해서 다신 안 가"라며 영영 떠나버릴 겁니다. 당신의 가게가 1시간 줄 서서 먹는 곳이 아니라면, 제발 의자에 방석부터 까세요. 엉덩이가 편해야 단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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