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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신(神)은 왜 당신 가게의 단골을 만들어주지 못하는가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12 09: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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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의 명백한 한계와 ‘발품’이라는 아날로그적 지혜에 대하여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우리는 바야흐로 ‘데이터 숭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손품’만으로 한 도시의 상권 지형도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죠. 특정 지역의 연령대별 유동인구, 시간대별 매출 추이, 경쟁업체의 밀집도 같은 정보들이 마치 계시처럼 모니터 위에 펼쳐집니다. 과거 선배 자영업자들이 닳아빠진 구두를 이정표 삼아 온몸으로 부딪혀야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들을, 우리는 이제 안락의자에 앉아 클릭 몇 번으로 취득합니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준 이 명백한 혜택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데이터라는 새로운 신(神)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디지털 신탁(神託)의 맹점에 눈감곤 합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데이터는 종종 ‘침묵’합니다. 숫자는 상권의 과거 이력과 현재의 단면을 보여주는 정교한 엑스레이(X-ray) 사진과 같습니다. 골격의 구조, 즉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나고 얼마의 돈이 오가는지는 보여주죠. 


그러나 그 상권이라는 유기체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의 온도, 살아 숨 쉬는 장기의 움직임까지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발품’이라는, 다소 구식으로 들릴지 모를 아날로그적 진단 도구, 즉 내시경(Endoscopy)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진정한 기회와 치명적 리스크는 숫자의 행간, 현장의 공기 속에 유령처럼 떠다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데이터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보기 위해, 우리 두 발로 땅을 굳건히 딛는 행위, 즉 ‘발품의 기술’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데이터는 왜 침묵하는가: 숫자가 놓치는 세 가지 진실


첫째, 유동인구의 ‘질(質)’과 ‘맥락(脈絡)’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특정 지역을 하루에 ‘몇 명’이 지나가는지는 알려주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기분’으로 그 거리를 걷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동인구의 ‘질’이자 ‘맥락’입니다.


가령, 상권분석 데이터상 하루 유동인구가 3만 명으로 동일한 두 지역, 서울의 ‘강남역 10번 출구’ 앞과 ‘연남동 동진시장’ 주변 골목을 비교해 봅시다. 데이터상으로는 강남역이 압도적인 A급지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기자기한 디저트와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무기로 한 작은 카페를 창업한다고 가정해 보죠. 강남역의 3만 명은 대부분 출퇴근과 환승을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기는 직장인, 혹은 약속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통과’이지 ‘탐색’이 아닙니다. 


반면 연남동의 유동인구는 그 수가 훨씬 적을지라도, 처음 보는 가게를 기웃거리고, 마음에 드는 공간에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된 ‘탐색자’들입니다. 유동인구의 양(量)은 강남이 우위일지언정, 당신의 잠재고객이 될 유동인구의 질(質)은 연남동이 압도적일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국내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본 도쿄의 ‘시모키타자와’는 JR 노선이 지나지 않아 데이터상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으로 분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 구제샵과 작은 극장,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모여 ‘시모키타자와’라는 브랜드를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젊은이들로 북적입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숫자’가 아닌, 그 동네만이 가진 ‘맥락’이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이죠.


둘째, 지도 위 가게들의 ‘생명력’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네이버 지도와 구글맵은 그곳에 가게가 ‘존재한다’는 사실(Fact)은 알려주지만, 그 가게가 과연 ‘살아있는지’에 대한 진실(Truth)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발품을 팔면 비로소 보입니다. 주인의 무관심 속에 색이 바래고 삭아가는 간판, 쇼윈도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텅 빈 채 적막감마저 감도는 홀. 이런 가게들은 지도 위에서는 버젓이 영업 중인 경쟁업체이지만, 현장에서는 상권의 쇠락을 알리는 ‘카나리아’일 뿐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배달 전성시대에는 홀의 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겉보기엔 한산해 보여도 배달 플랫폼의 주문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고, 라이더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가게가 진짜 알짜배기입니다. 반대로, 화려한 인테리어와 달리 가게 앞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하나둘 늘어나는 거리는, 데이터 지표가 아직 하강 곡선을 그리기 전부터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강력한 적신호입니다. 발품은 이처럼 상권의 ‘현재 진행형’ 상태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레이더 역할을 합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상권의 ‘결(Texture)’과 ‘기운(Aura)’을 측정하지 못합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지만, 데이터로는 결코 수치화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거리의 청결 상태, 보도블록의 디자인,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장르, 공기 중에 섞인 커피 향과 음식 냄새까지. 이 모든 감각적 정보의 총합이 그 상권만이 가진 고유한 ‘결’과 ‘기운’을 만듭니다.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길, 최신 유행의 편집샵과 예술가들의 갤러리, 유대인 전통 빵집과 젊은이들이 줄 서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기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이 독특한 ‘결’이 마레 지구를 다른 곳과 구분 짓는 정체성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향하는 레스토랑의 컨셉이 이 상권의 ‘결’과 조응하지 못한다면, 마치 잘 짜인 교향곡에 불쑥 튀어나온 불협화음처럼 느껴질 겁니다. 최고급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이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한복판에 있다면, 또 가장 트렌디한 비건 레스토랑이 종로의 국밥 골목에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데이터는 그저 ‘유동인구가 많다’고 말할 뿐, 그 기묘한 부조화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입니다.


성공 확률을 높이는 탐정의 기술: 발품의 5단계 방법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발품을 팔아야 할까요? 산책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상권이라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해부하는 탐정이 되어야 합니다.


1단계: 시간이라는 변수를 통제하라 - 최소 4번의 교차 검증 상권은 카멜레온처럼 시간과 날씨, 요일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한 번의 방문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직장인들의 활기 넘치는 ‘평일 점심’, 데이트족과 회식 인파가 뒤섞이는 ‘평일 저녁’, 가족 단위 방문객이 주를 이루는 ‘주말 오후’, 그리고 상권의 진짜 체력을 알 수 있는 ‘비 오는 날 저녁’까지. 최소 네 번의 다른 시간대에 방문하여 상권의 다채로운 민낯을 확인해야 합니다.


2단계: 페르소나에 빙의하라 - 고객의 여정을 시뮬레이션하라 가게를 구하는 ‘사장’의 시선이 아니라, 내 가게에 와주었으면 하는 바로 그 ‘고객’의 눈으로 걸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에서 내려, 당신이 점찍어 둔 가게까지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 보십시오. 길이 깨끗하고 걷기에 즐거운가? 아니면 가로등이 부족해 어둡고 위험하게 느껴지는가? 인도의 폭은 유모차나 휠체어가 지나가기에 충분한가? 고객이 주차장에서 가게 문 앞까지 걸어오면서 겪게 될 모든 물리적, 심리적 경험을 온전히 시뮬레이션해야 합니다.


3단계: 벤치마킹이 아닌 ‘체화(體化)’의 과정 - 가장 줄이 긴 가게를 경험하라 그 상권의 ‘성공 방정식’은 가장 줄이 긴 가게에 모범 답안처럼 적혀 있습니다. 밖에서 기웃거리며 손님 수만 세지 마십시오. 직접 그 줄의 일부가 되어 기다리고, 돈을 쓰고, 음식을 맛보며 그 공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가? 음식의 맛인가, 압도적인 가성비인가, 아니면 친절한 서비스인가? 주 고객층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주문하고 식사하는가? 이 모든 것을 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당신 가게의 성공 전략이 구체화될 것입니다.


4단계: 상권의 무의식을 읽어라 - ‘쓰레기통’과 ‘전봇대’를 관찰하라 고수는 보이지 않는 디테일에서 핵심을 읽어냅니다. 길거리 쓰레기통은 그 상권의 소비 패턴을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입니다. 스타벅스, 빽다방 등 테이크아웃 컵이 가득하다면 젊은 직장인과 학생들이 많다는 뜻이고, 배달음식 용기가 넘쳐난다면 1~2인 가구가 밀집한 주거 지역이거나 사무실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는 상권의 인구 구성을 알려줍니다. ‘영어/수학 과외’ 전단지가 많다면 교육열 높은 아파트 단지가 배후에 있다는 뜻이고, ‘용달/대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면 보다 서민적인 생활 상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5단계: 필터링된 정보가 아닌, ‘살아있는 정보’를 취득하라 - ‘이웃 가게’와 대화하라 부동산 중개인은 ‘계약 성사’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정보 제공자입니다. 그들의 정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필터링되었을 가능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진짜 살아있는 고급 정보는 당신이 들어가고 싶은 가게의 옆집, 앞집 사장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음료수 한 박스 사 들고 찾아가 "사장님, 이 근처에 가게를 열어볼까 하는데, 동네 분위기가 실제로 좀 어떤가요?"라고 겸손하게 물어보십시오. "여름엔 저 가로수 때문에 간판이 다 가려져", "저 앞 빌딩이 재건축 들어가면 2년간은 공사 소음 때문에 장사 힘들 거야" 같은, 그 어떤 상권분석 보고서에도 없는 치명적인 리스크나 예상치 못한 기회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손품’은 전쟁에 나가기 전 지도를 보며 전략을 짜는 참모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발품’은 그 지도를 들고 실제 전장에 나가 지형을 확인하고, 적의 동태를 살피는 정찰병의 역할입니다. 참모의 전략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듯, 정찰병의 현장 정보 없이는 필패합니다. 손품으로 단단한 가설을 세우고, 발품으로 그 가설을 증명하고 폐기하는 과정을 반복하십시오. 당신의 가게를 성공으로 이끌 진짜 ‘돈 되는 자리’는 모니터 안이 아니라, 당신의 땀과 관찰로 얼룩진 현장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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