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사장님, 요즘 장사 잘 되십니까? 아마 많은 분이 멋쩍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으실 겁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식자재 값, 매달 통장을 스쳐 가는 임대료, 별점 하나에 울고 웃게 만드는 배달 앱의 세상. 이건 뭐,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옆집이 ‘마라’로 대박을 치면 우르르 마라를 끓이고, 방송에서 ‘저탄고지’가 유행하면 허겁지겁 관련 메뉴를 내놓습니다. SNS에서는 ‘인증샷 챌린지’가 유행하고, 메뉴판에는 ‘유기농’, ‘무첨가’, ‘자연주의’ 같은 단어들이 빼곡합니다.
이 혼돈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노를 젓고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은 채 그저 남들이 젓는 방향으로, 파도가 치는 방향으로 휩쓸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모두가 똑같은 구호를 외칠 때, 과연 손님들은 누구의 목소리를 듣게 될까요?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생존법일까요? 오늘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감히 다른 길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식탁에 ‘자연’이라는 단어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명제는 마치 과학적 공리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릅니다.
어떤 현상이 ‘그렇다(is)’는 사실이 그것이 ‘옳다(ought)’는 가치 판단으로 직결될 수 없다는, 조금은 까다로운 철학적 개념입니다. 하지만 식문화의 세계에서는 이 오류가 아주 매력적인 마케팅 도구로 작동합니다.
왠지 ‘자연’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더 건강하고, 더 안전하며, 심지어 더 윤리적일 것이라는 후광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많은 식당과 식품 기업들이 이 ‘자연주의’라는 부적을 앞다투어 붙입니다. 왜일까요? 쉽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음식이 왜 특별한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깊이 고민하고 설명하는 대신 “저희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담았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퉁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실력 없는 의사가 “원래 몸이 그런 걸 어떡합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공부 안 한 학생이 “시험 문제가 이상했다”고 핑계 대는 것과 같습니다. 고민의 깊이가 얕고, 노력의 과정이 생략된 편리한 길입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모두가 ‘자연’을 외치는 시장에서 ‘자연’은 더 이상 차별점이 되지 못합니다. 너도나도 유기농이고, 너도나도 무첨가입니다. 결국 우리는 옆집보다 더 ‘자연스러운 자연’을 찾아 헤매는 출혈 경쟁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주의’라는 유행의 파도가 지나가면, 그 위에 세워진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것은 덤입니다. 실체 없는 구호에 지친 소비자들은 결국 모든 ‘자연’을 의심하게 될 테니까요.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진흙탕 싸움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요?
정답은 의외로 우리 자신 안에 있습니다. 파도를 따라가는 대신, 파도를 헤쳐나갈 우리 배의 ‘나침반’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거창하게 들리십니까? 아닙니다. 식당의 철학이란 “나는 왜 이 음식을, 왜 이곳에서, 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 파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사장님만의 정직한 대답입니다.
저 멀리 미국에는 ‘음식으로 지구를 구하겠다’는, 어찌 보면 엉뚱한 철학을 가진 회사가 있습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만든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자연산 연어’를 파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어를 잡고, 토양을 회복시키는 ‘재생 유기 농법’으로 기른 식재료를 씁니다. 그 모든 과정을 영상과 글로 기록하여 소비자에게 보여줍니다. 그들의 철학은 ‘자연을 판다’가 아니라 ‘자연을 지킨다’이며, 이 철학이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소비자는 통조림 하나를 사면서 이 위대한 여정의 동반자가 됩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이단아 ‘치폴레’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나침반은 ‘진정성 있는 음식(Food with Integrity)’이라는 철학입니다. 그들은 ‘자연’이라는 모호한 단어 대신 ‘책임감 있게 기른 육류’, ‘53가지 진짜 재료’와 같이 자신들의 철학을 구체적인 행동 약속으로 번역해냅니다. 이 약속이 있기에, 위기가 닥쳤을 때도 숨지 않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작은 가게가 파타고니아나 치폴레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나침반은 필요합니다. 그 철학은 소박해도 좋습니다. “내 아들딸에게 먹일 수 없는 음식은 절대 팔지 않는다”는 신념일 수도 있고, “우리 동네 사람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김치찌개를 맛보게 하자”는 자부심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식자재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고집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철학이 진짜 ‘나의 것’이어야 하고,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철학이 머릿속에만 머문다면 한낱 공상에 불과합니다. 나침반이 선장실에만 걸려 있다면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은 행동으로, 과정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투명성’의 힘입니다.
투명성은 단순히 주방에 CCTV를 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게의 철학이 어떻게 음식 한 그릇에 담기는지를 손님에게 ‘보여주는’ 모든 노력입니다. “좋은 재료를 씁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오늘 들어온 이 배추는 해남 이장님 댁 막내아들이 어젯밤 직접 뽑아 올린 것입니다”라고 그 재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왜 우리 집 콩나물국은 유난히 국물이 시원한지, 그 비법이 8시간 동안 정성껏 우려낸 황태 육수에 있다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손님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우리 가게의 철학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팬’이 됩니다. 음식값을 지불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노력과 가치에 기꺼이 돈을 냅니다. 가격 경쟁의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우리 가게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파는 ‘가치 경쟁’의 블루오션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금까지 철학, 투명성, 이야기 등 많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단 하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바로 ‘음식의 본질’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과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한들, 음식 자체가 맛이 없다면 모든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결국 ‘맛있고 든든한 한 끼’를 통해 손님에게 행복과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사장님, 지금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음식의 본질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유행을 좇고, 마케팅 구호에 매달리느라, 음식 그 자체에 쏟아야 할 정성과 고민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요?
이제 나침반을 고쳐 세울 시간입니다. ‘자연주의’라는 안개 속에서 벗어나 ‘나의 철학’이라는 등대를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우리 음식의 본질적인 가치를 묵묵히 증명해내야 합니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유행에 편승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외로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야 비로소 변덕스러운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당신만의 단단한 섬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사장님,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음식은 지금 어떤 맛을 내고 있습니까?
그 안에 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