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
정성을 다한 하루를 마감하고 텅 빈 가게에 홀로 앉아, SNS를 달구는 어느 식당의 대기 줄을 보며 자문해본 적 없는가. ‘내 노력이 부족한가? 내가 세상의 흐름을 못 읽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 탓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우리가 뛰고 있는 이 ‘게임’ 자체가 교묘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가 공정한 규칙 아래 경쟁한다고 믿지만, 실은 어떤 선수는 보이지 않는 로켓을 등에 달고 뛰는 것과 같다. 이 거대한 환상이 바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이다.
오늘은 이 불공정한 게임의 실체를 파헤치고, 판을 따르기를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성공을 거머쥘 수 있는 ‘전략적 반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언제부터인가 외식업은 소수의 승자를 가려내는 살벌한 ‘미식 올림픽’이 되었다. 심판은 미쉐린 가이드, 방송사 PD, 그리고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이다. 이 게임의 법칙은 세 가지다.
첫째, ‘승자독식’의 법칙이다. 심판의 손끝에서 어떤 식당은 하룻밤 만에 ‘성지’가 되고, 대다수는 이름도 불리지 못한 채 잊힌다. 성공은 오직 ‘스타 셰프’ 한 명의 천재성 덕분으로 포장된다. 그의 뒤에서 16시간씩 주방을 지키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땀은 성공의 방정식에서 쉽게 지워진다.
둘째, ‘노동의 가치 훼손’이다. 레스토랑의 성공은 오케스트라의 합주와 같음에도, 우리는 지휘자 한 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셰프는 ‘아티스트’가 되지만, 접시를 닦는 직원은 그저 ‘노동자’로 남는다. 일의 존엄성에 대한 이러한 차별 위에서 쌓아 올린 성공은 결코 단단할 수 없다.
셋째, ‘미식 서열화’라는 문화적 오만이다. 파인다이닝은 고급이고 백반은 저급이라는 은밀한 서열은 음식을 사람을 나누는 기준으로 변질시킨다. 음식은 본디 위로와 연결의 매개체여야 하거늘, 이제는 과시와 차별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구조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유행이라도 따라가야지.” 이는 가장 안일하고 위험한 생각이다. 유행을 좇는 순간, 당신의 가게는 수많은 복제품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차별점이 없는 가게들의 종착역은 결국 ‘출혈 경쟁’이다.
더 큰 문제는 ‘정체성의 상실’이다. 유행이라는 파도가 지나가면, 손님들이 당신의 가게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이는 스스로 방향키를 놓아버리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거대한 파도와 싸우는 대신, 어떤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을 ‘나만의 단단한 섬’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전략은 다음과 같다.
미식가의 별점 대신, 동네 주민들의 발도장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가게를 ‘맛집’을 넘어선 동네의 ‘사랑방’으로 만드는 것이다. 강력한 단골이라는 공동체는 그 어떤 평가보다 굳건한 성공의 기반이다. 성공의 척도를 ‘명성’이 아닌 ‘지속가능성’으로 바꿀 때, 우리는 비로소 경쟁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최고의 맛집”이라 외치는 대신, “우리 가게 된장찌개에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라고 속삭여야 한다. 이 가게를 열게 된 꿈, 식재료에 담긴 농부의 땀, 레시피에 깃든 가족의 사랑. 이 진정성 있는 스토리야말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무기다. 손님은 기꺼이 그 이야기의 팬이 된다.
정직한 재료로 만든 따뜻한 밥 한 끼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행복한 직원이 최고의 서비스를 만든다. 건강한 노동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성 있는 환대, 이것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경쟁력이다.
결국, 이 불공정한 게임에서 살아남는 길은 성공의 정의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오랜 시간 이웃의 사랑을 받는 것. 직원과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의 철학에 떳떳한 것. 이것이 새로운 성공이다.
당신의 작은 식당은 단순히 밥을 파는 공간을 넘어, 각자도생의 차가운 세상에 맞서 온기와 연대를 나누는 ‘작은 공화국’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단단한 섬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라는 바다 역시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그 위대한 변화는, 바로 오늘 당신의 주방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